조기 종결 … '반쪽 수사'로 끝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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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8개월여 만에 마무리 수순에 들어갔다. 엘리스 쇼트 론스타 부회장 등 미국 본사 임원 등에 대한 체포영장은 발부됐지만 검찰이 이번 사건의 핵심 인물로 지목한 유회원 론스타어드바이저코리아 대표의 구속영장은 또 기각됐기 때문이다.채동욱 대검찰청 수사기획관은 "법원의 영장 기각으로 수사가 진행되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수사 결과 발표가 당초 계획보다 빨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 "한계 드러낸 검찰 수사"=대검 중수부는 3월 17일부터 국세청, 금감원, 국회 재경위 등에서 고발해 온 론스타 관련 사건들을 통합해 수사했다. 검사 15명, 수사관 80여 명이 참여한 수사는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 ▶외환카드 주가 조작 혐의 ▶비자금 조성 여부 ▶외환은행 인수 로비 의혹 등 네 갈래로 진행됐다. 검찰은 비자금 조성과 주가 조작 혐의 등에 대한 수사를 통해 사건의 본체인 헐값 매각 의혹을 밝혀낸다는 계획이었다.

먼저 검찰은 론스타 측과 외환은행 관계자들의 유착 의혹을 조사했다. 론스타에 자문했던 박순풍(49) 엘리어트홀딩스 대표, 신동훈(47) 전 허드슨어드바이저코리아 대표, 전용준(50) 전 외환은행 경영전략본부장 등이 구속됐다. 하지만 모두 순수 개인 비리 차원에 그쳤다.

인수 로비 의혹에 대한 수사와 관련해 하종선(51) 현대해상화재보험 대표를 구속했지만 돈의 출처와 사용처는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았다. 하씨와 로비를 공모한 의혹을 받고 있는 마이클 톰슨 론스타 아시아지역 고문변호사는 사실상 조사가 불가능하고 로비 대상으로 지목된 변양호(52.보고펀드 대표)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에 대한 영장은 기각됐다.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과 관련해서는 2003년 당시 외환은행과 금융정책기관 관계자들이 국제결제은행(BIS)기준 자기자본비율을 조작해 론스타에 인수 자격을 준 혐의가 있다고 검찰은 밝혔다. 그러나 론스타 측의 개입 여부를 규명하지 못한 채 이강원(56) 전 외환은행장을 구속하는 선에 머물렀다. 검찰 관계자는 "법원의 잇따른 영장 기각으로 반쪽 수사로 끝날 것 같다"고 말했다.

◆ "체면 세웠지만 수사 실익 없어"=세 차례 시도 끝에 쇼트 부회장 등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은 검찰로서는 체면을 세웠지만 실익은 없는 것으로 분석된다. 쇼트 부회장 등에 대한 조사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많기 때문이다.

범죄인 인도를 청구하더라도 미국 수사 당국이 범죄 성립 여부를 판단하는 절차를 거쳐 인도 결정을 내리는 데만 최소 2년 가까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은 올 6월 스티븐 리(37) 전 론스타코리아 대표에 대한 범죄인 인도 청구를 미국에 요청했지만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유회원씨에 대한 영장이 네 차례 기각된 것은 검찰로서는 뼈아픈 대목이다. 검찰은 쇼트 부회장 등에 대한 체포영장보다 유씨에 대한 구속영장에 많은 공을 들였다. "지금까지 수사한 모든 내용을 영장에 담았고 불구속 상태에서는 수사를 발전시킬 수 없다"며 2년 전 무혐의 처리된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까지 적용해 배수진을 쳤다. 하지만 법원은 "주거가 일정해 도주 우려가 없고 이미 많은 자료가 압수돼 증거 인멸의 우려도 없다"며 불구속 수사할 것을 요구했다. 대검 관계자는 "정작 수사를 위한 구속영장은 기각하고 실익 없는 체포영장만 발부한 것은 수사를 그만 하라는 소리"라고 말했다.

◆ "관련자 대다수 불구속 기소될 듯"=검찰은 유회원씨와 정헌주(47) 허드슨어드바이저코리아 대표 등 그동안 영장을 청구해 기각당한 관련자들을 불구속 기소하면서 수사를 마무리할 것으로 보인다. 이르면 다음주 중 수사 결과를 발표할 가능성이 크다.

채 수사기획관은 "최근의 영장들과 관련한 일련의 사태는 단순한 론스타 사건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검찰 입장에서는 이 상황에 대해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고 더 이상 말로 대응하지 않을 것이며 최근 전국적인 일련의 영장 기각 사태와 함께 대응하겠다"고 덧붙였다. 대검은 전국 판사들의 영장 기각 및 발부 사유를 분석 중이어서 이 결과를 공개할 경우 파장이 예상된다.

문병주.박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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