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디지털 세상 읽기

반도체 산업의 숨통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박상현 오터레터 발행인

박상현 오터레터 발행인

미국과 중국 사이에 반도체 칩을 두고 벌어지는 경쟁은 한국에서는 ‘칩4 동맹’으로 대표된다. 미국의 주도로 반도체 강국인 한국과 대만·일본의 협업 체제를 강화하려는 이 동맹은 잘 알려진대로 중국과의 거래를 포기할 수 없는 한국을 난감한 상황에 몰아넣고 있다. 하지만 정착 미국에서는 ‘칩4’에 관한 뉴스를 듣기 힘들다. 미국이 끌어들이려는 동아시아 국가들에게는 큰 고민거리인 칩4 동맹은 사실 반도체 확보를 위한 미국의 거대한 전략에서 일부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국 반도체 전략의 다른 부분은 뭘까? 우선 미 의회와 백악관은 최근 우리 돈으로 68조원이 넘는 업계 보조금을 포함해 약 366조원의 대대적인 투자를 발표했다. 미국 언론에 가장 크게 부각되는 내용은 바로 이 투자다. 그런데 이게 전부가 아니다. 한 편으로는 이렇게 자국 산업을 키우는 반면, 다른 한 편에서는 중국의 반도체 산업의 숨통을 죄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바로 반도체 칩을 인쇄하는 데 사용되는 툴(도구)의 수출을 제한하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이미 중국에 이런 툴을 판매한 미국 기업이 이를 유지 보수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도록 할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미국 정부의 이런 방침이 중국 반도체 산업의 성장을 막는 것뿐 아니라, 현재 중국이 가진 반도체 생산 능력까지 축소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물론 이런 툴을 만드는 기업들로서는 큰 시장을 잃게 되었지만 양국이 사실상 반도체 전쟁에 돌입한 상황이기 때문에 항의할 수도 없다. 그런데 이 기업들 역시 반도체 칩의 부족으로 이미 생산이 제한된 상황이라는 것이야말로 반도체 전쟁의 아이러니다.

박상현 오터레터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