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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교사·교수, 논술 개선 논의해 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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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대입 논술의 개선 방안을 놓고 교사.교수.학부모가 14일 중앙일보 회의실에서 토론을 벌였다. 왼쪽부터 김경범 서울대 입학관리본부 연구교수, 이원희 잠실고 교사, 강치원 사회자(강원대 교수), 정영주 고1.중3 학부모, 박제남 인하대 입학처장. 안성식 기자

◆채점은 공정한가

▶사회(강치원)=수험생과 학부모들은 대학의 논술 채점 방식에 대해 궁금해한다. 채점은 어떻게 하나.

▶박제남(인하대 입학처장)=대부분 대학이 교수들의 전공과 나이를 고려해 채점 교수 3~4명을 한 팀으로 구성해 평균 점수를 낸다. 채점 과정이 5~6일이 넘으면 체력과 정신적으로 부담되는 게 사실이다.

▶김경범(서울대 입학관리본부 연구교수)=서울대의 채점 교수는 40~50명으로 많지는 않다. 3명이 한 팀으로 하루 6~7시간 채점한다. 줄을 세우는 것이 아니고 전체 중에서 잘 쓴 글을 골라내는 방법이다.

▶이원희(잠실고 교사)=논술은 주관식이므로 무엇보다 평가자에 대한 신뢰가 전제돼야 한다. 그런데 하루에 수십 장씩 중노동을 하듯 채점하면 집중력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이 때문에 교수들이 채점을 기피하기도 한다고 들었다. 대학들이 채점에 더 신경 써야 한다.

▶정영주(학부모)=학부모 입장에선 채점자의 사견과 감정이 개입될 수 있다는 걱정을 하게 된다. 그럴 염려는 없나.

▶김=특정 채점자의 개인적인 견해가 강하게 반영되지 않도록 평가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가채점을 통해 채점 기준을 공유한다. 또 한 답안에 대해 채점자 3명이 충분한 토론을 하고 점수를 낸다. 개인 감정이 강하게 개입될 만한 정치나 종교적인 주제는 출제하지 않는다.

▶박=학교에서 배운 교과 내용을 바탕으로 창의적으로 주장을 펼치면 채점에서 유리하다. 주장을 펴는 과정이 논리적으로 얼마나 정당한지를 살피는 과정에 채점자의 개인적 신념이 끼어들지는 않는다. 교수의 하루 채점 분량 등 일부 문제점은 대학들이 계속 보완해 가고 있다.

▶김=대부분의 수험생은 중간 정도의 점수를 받는다. 채점해 보면 아주 잘하는 소수, 대부분 엇비슷한 답안, 이보다 못하는 극소수(그야말로 문장이 안 되는 경우도 있다) 등 세 그룹으로 나뉜다. 상위 그룹은 채점위원 의견이 거의 일치한다. 중간 그룹에서 누가 조금 높고 낮고 하느냐의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크지 않다. 잘 쓴 학생을 골라내는 데 문제가 없다.

▶사회=대학들이 공개한 채점 기준표를 보면 창의력.표현력.논증력 등 기준이 있다. 채점할 때는 이런 구분 없이 종합적으로 채점할 수밖에 없지 않나.

▶김=맞는 말이다. 답안지를 보면서 이 학생의 창의력은 몇 점이라고 정량화하기는 불가능하다. 이런 기준표를 제시하는 것은 채점자들에게 이런 사항을 염두에 두고 평가하라는 가이드라인의 의미다.

▶정=우수 답안을 공개하면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텐데.

▶이=필요하다고 본다. 학생과 학교 입장에서는 어떤 글이 잘 쓴 것인지 믿을 만한 모범 자료가 전혀 없다. 대학들은 채점 기준이 실제로 어떻게 적용됐는지 분석한 자료나 우수 답안의 유형을 공개해야 한다.

▶김=실제 논술 평가 결과를 공개하면 학생들의 사고를 정형화할 우려가 있다. 실제로 2004년 서울대가 서론을 우화로 시작한 논술 모의고사 1등 답안을 공개했더니 2005학년도에 그 답안 형태를 카피한 것이 수두룩했다. 따라서 총평은 가능하지만 모범 답안은 절대 공개할 수 없다.

▶이=프랑스의 바칼로레아(대학입학자격시험)는 시험이 끝난 뒤 올해 우수 답안이 무엇인지 공개한다. 대학들이 좀 더 객관적으로 분석한 자료를 공개하면 학교나 학생들이 불안해하지 않을 것이다.

▶김=우수 답안을 공개하면 사교육 시장만 키워 줄 위험성도 있다. 학원들이 합격 답안이 적중했다고 광고하면 이를 검증할 길도 없다. 그 후 상황을 누가 책임질 수 있나.

▶이=(2008년 논술) 유형이라도 빨리 발표해야 한다. 몇몇 대학을 제외하곤 아직 문제 유형 정리가 안 됐다. 특히 수리형 논술이 문제다. 평생 글쓰기를 한 이어령 전 이화여대 석좌교수도 "요즘 논술을 풀기 어렵다"고 했지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교수는 인문학을 했기 때문에 수학.과학 형식의 문제를 못 풀 수도 있다. 하지만 성인들도 데카르트를 많이 읽지 않았는데 논술 제시문으로 나오고 있지 않은가. 교사들은 제시된 논술 유형이 없어 뭘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당황한다.

▶박=10일 열린 고교-대학 간 상호협의회 첫 회의에서 논의한 결과 '논술의 출제 유형과 취지.난이도 등을 대학과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홈페이지에 예시문항과 함께 공개할 것'을 대학에 권장했다. 그러나 채점 결과 공개에 대해서는 대학마다 입장이 다르다. 더 논의해 보겠다.

◆창의적 논술은

▶사회=채점 기준을 보면 창의력이 항상 큰 비중을 차지한다. 창의적인 논술이 뭔가.

▶정=학부모 입장에선 무엇이 창의력인지 이해하기 힘들다. 아이가 창의적으로 썼더라도 채점자 눈에는 엉뚱하게 비치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그래서 사교육의 틀에 박힌 답안에라도 의존하려는 것이다.

▶박=창의력이란 교육과정 안에서 근거를 찾아 자기 주장을 펼 수 있는 능력이다. 예를 들어 고속도로에서 자동차 간에 왜 100m 간격을 둬야 하는지 설명하는 데도 '무리함수' 개념을 사용해 논리적인 주장을 펼 수 있어야 한다. 단순히 개념 외우기에만 집착하는 학생과 이것을 왜 배우는지 고민해 본 학생 중에 누가 창의력이 있는지는 금방 판가름 난다. 기본 원리를 사색하는 과정에서 창의력이 생긴다.

▶이=학원에서 가르치는 대로 기발한 사례를 인용한다고 창의적인 글이 되는 건 아니다. 창의적으로 쓰려면 몇 가지 능력이 있어야 한다. 학교 교육과정에서 배운 개념을 학생이 다른 사회현상과 연결할 능력, 풍부한 독서를 통해 적절한 논거를 제시할 수 있는 능력, 이를 효과적으로 표현할 능력이 필요하다.

▶김=어떤 주제든 넓고 깊게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창의력이다. 예술가적인 창의력을 학생들에게 바라는 게 아니다. 한 가지 주제에 대해 여러 방향의 시각을 갖고 각각에 대해 얼마나 깊게 자기 생각을 합리화할 수 있는지를 보려는 것이다.

▶정=창의력을 키우려면 교과 과정과 연계시켜야 한다는데 학교는 이런 환경을 제공하지 못한다. '내신.수능.논술' 어느 것 하나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학부모 입장에서는 비싼 돈을 들여 학원에 보내는 것이다. 서울대 준비 전문학원에 보내 모범 답안을 달달 외워 성공하면 '대박'이라는 인식이 퍼져 있는 게 현실이다.

▶이=학교에서는 수능 성적 때문에 오지선다형 문제를 푸는 수업에 익숙해 절차적 사고를 가르치거나 교과 내용을 사회 이슈와 연결시켜 생각하게 하는 수업이 부족했다. 그래서 요즘 많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마치 사교육이 대안인 듯 여기고 공교육은 손 놓고 있는 것처럼 매도하는 게 아쉽다. 논술은 학원에서 한 번에 대박을 노릴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교사 참여 가능한가

▶사회=고교-대학 상호협의체 합의사항 중 교사의 논술 출제.검토 참여 안이 있었다. 가능한가.

▶이=출제에 교사가 참여하는 것은 고교 교육과정과 논술을 연계시키는 데 가장 직접적인 방법이다. 교사들이 참여하면 고교 교육과정에 대한 대학의 이해를 도울 수 있다.

▶박=협의회는 강제성이 있는 조직이 아니다. 교사 참여 얘기가 나온 것은 논술 문제가 어렵다는 지적이 있어서다. 교사가 난이도 조절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대학마다 입장이 다르므로 대학에 맡겨야 한다.

▶김=교사들이 출제.검토 과정에 참여하는 것은 민감한 문제다. 어느 고교의 교사를 참여시키느냐부터 짧은 출제 기간에 교사들의 지적사항을 어떻게 수용하느냐 등 어려움이 많다. 중요한 것은 대학이 교육과정을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하는가다. 교사들이 직접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정=학생과 학부모는 늘 교육 현안에서 소외된다는 느낌이 든다. 학교에서, 대학에서 이렇게 저렇게 하겠다고 하면 따라가기 바쁘다. 학부모.학생들의 얘기도 좀 들어 달라.

◆공교육 논술 방향은

▶사회=논술 따로, 내신 따로, 수능 따로인 상황이다. 고교의 논술 교육 방향은 뭔가.

▶이=기존의 암기식 수업을 독서.토론.글쓰기 통합 방식 수업으로 바꿔 가는 과정에 있다. 잠실고에서는 분기별로 학생들에게 독서 자료를 주고 토론하도록 하는데 학생들의 열의가 대단하다. 공교육 내에서 정착되도록 시간을 갖고 모두가 좀 참자. 교육 당국은 간섭만 하지 말고 대학 자율권 보장과 공교육 정상화 노력에 힘써야 한다. 또 '논술 펀드(가칭)'를 만들어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

▶박=교사들이 적극적으로 연수에 참여해 통합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검토해 봐야 한다. 각 지역 국립대 등이 교사 연수를 할 수도 있다. 교육부는 논술가이드라인을 폐지해 대학의 자율권을 보장해야한다. 또 교사 연수기관 지원과 참여 교사 인센티브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

▶김=공교육 안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논술은 글쓰기 연습이 아니다. 그래서 책을 읽고 토론을 하도록 해야 한다. 우선 공교육 수업 모델을 바꿔 가야 한다. 수업시간에 글을 써서 돌려 보고 토론하면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이런 과정을 내신 성적에 반영하면 교육과정 내에서 별도의 논술 교과가 필요 없다.

정리=박수련 기자 <africasun@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