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살림 버거운 「모래알 거여」/민자,내각제파문 대응에 계파 제각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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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YS,「포기」 끌어내려 초강수/정면돌파 맞설 땐 난파 위기
민자당을 소용돌이에 빠뜨린 내각제 합의각서 공개사태는 김영삼 대표최고위원이 29일 당무집행을 거부함에 따라 위기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김 대표의 출근중지는 내각제문제의 당론 재조정을 요구,사실상 각서의 효력상실을 노리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이에 반해 민정ㆍ공화계는 사태수습을 위해선 내각제 조기공론화라는 정면돌파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입장이어서 사태가 악화되고 있다.
민정ㆍ공화계나 김 대표의 민주계 모두 선택의 폭이 제한된 처지여서 양측의 강성대치가 오래 지속될 경우에는 당이 두동강나는 최악의 사태까지도 예상된다.
○…각서공개와 내각제 합의를 분리,별개의 사안으로 접근해온 민정ㆍ공화계는 김 대표의 당무 포기사태에도 불구,합의각서가 공개된 이상 정공법적 해결책 이외에 다른 수습방안이 없다는 기본입장을 고수하고 있으나 뚜렷한 방안은 아직 결정돼 있지 않다.
민정계의 핵심중진의원은 김 대표가 당사 출근중지라는 실력행사로 나오는 것은 내각제의 조기공론화를 막겠다는 뜻이지만 실제는 합의각서의 실효화를 겨냥하는 것이라고 파악했다. 민정계의 박태준 최고위원은 이미 『합의각서 공개 때문에 내각제를 못하겠다고 한다면 처음부터 내각제를 않기 위해 행동해왔다는 오해를 사게 되는 것』이라고 못박은 바 있다.
민정ㆍ공화계는 각서 공개 파문이 확산되는 근본적 원인이 김 대표의 내각제에 대한 불투명한 태도에서 비롯된다고 보고 있다.
합의서명(5월6일)한 지 한달쯤 지나 느닷없이 「국민과 야당이 반대하면 개헌불가」라는 모호한 표현으로 내각제 추진을 교착상태에 빠뜨리고 이것이 당내불화ㆍ정국불안의 원인이 됐다는 진단을 하고 있다.
각서공개는 단순한 사고에 의한 것이며,결코 내각제 합의를 훼손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님에도 김 대표가 이를 수긍하지 않는 것은 내각제 개헌의 입장을 재조정하기 위한 계산으로 보고 있다.
○…민정ㆍ공화계는 각서파문을 공론화로 수습할 수밖에 없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으나 공론화의 수준에 대해선 확실한 입장정리를 못한 채 고심하고 있다.
27,28일 이틀간 청와대,민자당의 민정ㆍ공화계,안기부 등 여권 핵심멤버들이 모여 대책회의를 가졌으나 공개논의의 방법과 김 대표의 반발에 대한 대처방안을 놓고 입장이 다소 엇갈린 것으로 알려졌다.
참석자들은 「내각제 합의의 확인절차」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지만 확인절차의 방법을 놓고 당의 공개토론에 부치자는 정면돌파의견과 각서에 서명한 노 대통령과 두 김 최고위원간의 재확인에서 머물러야 한다는 신중론으로 나눠졌다.
정면돌파입장은 각서가 공개된 마당에 내각제문제를 덮고 내년초로 넘기는 것은 내각제 이미지에 더 많은 흠집이 나고 김 대표의 시간벌기전략에 말려든다는 것이다.
신중론은 『김 대표로부터 내각제에 대한 확실한 답보를 끌어내려는 것은 수습을 어렵게 한다』(김윤환 총무)는 것으로 냉각기를 갖자는 입장이다. 김 총무는 『금년내 공론화하자는 것은 정치현실을 모르는 것』이라고 조기공론화에 제동을 걸고 있다.
신중론은 내각제 포기쪽으로 몰고 가는 김 대표의 전략에 말려든다는 비판을 받고 있고,정면돌파론은 연내까지 정치ㆍ사회안정에 주력한다는 노 대통령의 약속이 부담이 되고 있다.
민정계측은 내각제 개헌안의 구체적 내용이나 추진시기ㆍ방법 등에 대해서는 어차피 노­김 양자회동에서 결판을 내야 하나 ▲연내엔 내각제개헌 추진확인 ▲실질적 공론화는 내년 추진으로 가닥을 잡고 있는데 만약 김 대표나 민주계가 「개헌확인」 과정을 거부한다면 결별도 불사한다는 강경한 배경을 깔고 있다.
○…이에 대해 김 대표와 민주계는 각서공개와 내각제 합의를 분리시키는 민정ㆍ공화계의 태도를 정면 반박하고 있다.
각서공개는 내각제에 대한 상황논리적 근거를 하고 있는 김 대표를 곤경에 빠뜨리려는 민정계의 계획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따라서 이번 사태를 조기공론화 쪽으로 몰고 갈 경우 정면충돌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게 민주계의 생각이다. 김 대표는 28일 저녁 민주계 의원 대책모임에서 『보안사 사찰파문 등 현재의 상황에서 내각제를 공론화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청와대에 원본만 보관키로 했던 각서가 사본이 2부나 만들어진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계속 각서의 고의 유출가능성을 지적했다는 것.
김 대표가 내각제 포기를 정식으로 들고 나오면 민정ㆍ공화계 개헌파와 정면충돌이 불가피하게 되는데 그럴 경우 민자당은 누구할 것 없이 공멸하고 만다는 게 민주계의 위협이다.
김 대표가 이같은 극약처방을 언제 천명할는지는 유보하고 있으나 노 대통령과 김 대표의 회동에서 그 가닥이 잡힌 다음에야 구체적인 진퇴문제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박보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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