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청와대가 하면 투자, 국민이 하면 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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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탈.분노.배신감….

"지금 집 사면 낭패"라고 말한 이백만 청와대 홍보수석이 강남에 20억원대의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다는 보도를 접한 시민들은 혼돈 상태에 빠져 있었다.<본지 11월 11일자 1면>

첫 반응은 부러움이나 상대적 박탈감에 가까웠으리라. 사실 고위 공직자만 아니었다면 이 수석은 부동산 투자의 모범 사례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 뻔했다. 자녀 교육 때문에 서울 강남 일원동에 작은 평수의 아파트를 산 뒤 은행 돈을 빌려 더 좋고 큰 아파트의 분양권을 따내는 '갈아타기'에 성공했다. 2년 만에 10억원대의 시세차액을 건진 셈이다. 노력도 했고, 운(運)도 따랐고, 불법을 저지르지도 않았다. 그의 주(住)테크 기법은 기회만 된다면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이 본받길 원하는 유형이었다.

주부 심재희(55)씨는 본지에 전화를 걸어 "자신(이백만 수석)도 집을 옮겨 환경 좋은 강남으로 갔으니, 그런 생활이 평범한 사람들의 욕구라는 것을 알고 있기는 하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서울 구로구에 산다는 40대 남성은 "이 수석이 8억여원을 대출받았다는데 공무원이 무슨 돈으로 그 많은 이자를 갚아온 건지 꼭 좀 물어봐 달라"고 부탁했다.

부러움은 이내 분노와 배신감으로 변했다. 청와대 핵심 인사들은 그동안 '강남 사람'을 '공공의 적'으로 몰아세웠다. 이들은 사회 양극화, 소득 불균형 등 각종 사회문제의 원인이 강남에 있다고 비판해 왔다. 그러나 청와대 핵심 실세 중의 한 명인 이 수석이 알고 보니 전형적인 '강남 모델'의 추종자였음이 드러난 것이다. 시민들은 이런 이율배반적 행태에 분통을 터뜨리며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냐"고 묻고 있다.

한 네티즌(ID qwqw3030)은 "자기는 22억원짜리 집으로 옮겨 엄청난 돈을 벌어놓곤 남들에겐 '집 사지 말라'고 하니 누가 그 말을 듣겠느냐"고 꼬집었다. 회사원 정상훈(35)씨는 "입으로는 '집 사지 말라'고 했지만 몸으로는 '얼른 집 사라'고 보여줬다"고 말했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냉소적 반응은 더욱 싸늘해졌다.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각종 포털 게시판엔 '부동산 가격을 폭등시켜 놓고도 자기 책임 아니라고 오리발 내미는 관료들은 모두 형사 처벌해야 한다'(123sahara), '지난 대선 때는 노무현 후보의 눈물이 화제였는데 이제는 서민들만 피눈물 흘린다'(ps78782003)는 등 격한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시민단체도 비판에 가세하고 있다. 경실련 박완기 실장은 "정부의 정책을 믿고 따르라던 청와대의 표리부동을 확인한 사건"이라며 "무너진 국민의 신뢰를 복구하기 위해선 부동산 정책라인을 교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와대는 그동안 민심과 거꾸로 된 결정을 많이 내려 '역주행 정권'이란 비판까지 듣고 있다. 이번에는 국민의 아우성을 외면하지 않길 바란다.

김호정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