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터널­그 시작과 끝:15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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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제3부 남로당의 궤멸/전 남로당 지하총책 박갑동씨 사상편력 회상기/북에도 남으로도 못갈 처지/진퇴양난속 무엇을 위해 싸웠는지 회의감만
순천평야에는 벼이삭이 누렇게 익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갑자기 공중에서 쌕쌕이 떼가 우리를 발견했는지 금강하하며 기관총을 쏘아댔다. 우리는 얼떨결에 길가 도랑에 뛰어들어 아카시아 숲밑으로 기어들었다. 쌕쌕이가 얼마나 낮게 내려왔는지 얼마 높지도 않은 아카시아 가지가 폭풍에 날리는 듯 했다. 쌕쌕이가 한바퀴 도는 사이에 우리를 놓치자 이미 기총소사를 받고 쓰러져 있는 한길 위의 죽은 소와 달구지에 기총소사를 가했다.
쌕쌕이 떼가 우리 머리위에서 사라진 후 도랑에서 기어 겨우 순천∼은산도로를 횡단해 북쪽 산속에 숨을 수가 있었다. 그때 큰 프로펠러 비행기 편대가 순천평야 위를 덮고 낙하산 부대를 투하시키는 것이 보였다. 밤이 됐으나 잘 집을 찾지못해 바위위에 돌을 주워모아 불을 질러 돌과 바위를 데우고 그 위에 앉아 돌을 배에 품고 하룻밤을 지냈다.
새벽 추위 때문에 일찍 일어나 북으로 향해 산길을 걸었다.
저쪽에서 쥐색옷을 입은 한패의 사람들이 오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를 보고 공포에 떨었다. 『누구요?』하고 물으니 대답도 하지않고 소나무 숲속으로 달아났다. 탄광에서 강제노동을 하고 있던 정치범들 같았다. 『동무들! 우리는 당신들을 해치지 않으니 남으로 가시오. 우리는 남에서 오는 사람들이오』하고 큰소리로 불렀으나 그들은 나오지 않았다.
아무리 걸어가도 우리가 찾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도 없고 조선노동당도 없었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지옥같은 현실뿐이며 그들이 내걸고 있는 그럴듯한 정강정책의 실천은 도저히 찾아볼 수 없었다. 우리 일행은 이북땅에 들어와서 실망뿐이라 걸을 힘도 빠져나갔다. 도로 이남땅으로 돌아가자는 말까지 나왔지만 뒤에는 우리를 빨갱이라고 죽이려는 유엔군의 기동부대가 쫓아오고 있었다.
정말 진퇴양난이었다. 밤이 돼 잘 집을 찾았다. 어느 집이나 남자가 남아 있는 집은 없었다. 차가운 헛간 땅바닥에 수숫대를 깔고 누우니 배가 아파왔다. 강냉이 밥만 먹으니 소화가 되지않아 설사만 하는 중이었다. 참을 수가 없어 대변을 보려고 집뒤 산 밑에 가서 쪼그리고 앉았다. 어둠 속에 흰옷을 입은 귀신 같은 것이 사방을 둘레둘레 살피며 산 밑으로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녀가 그집 안주인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때 이북 곳곳에는 대한민국을 지지하는 치안대라는 것이 있었다. 나는 그녀가 근처 산속에 있는 치안대에 밀고해 우리를 습격시키려는 것인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나는 소련제 권총을 빼들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 뒤에서 인기척이 있었다.
돌아보니 우리 대원이 총을 들고 따라오고 있었다. 산고개를 몇개 넘으니 손바닥만한 화전이 몇뙈기 있었다. 그 화전옆에 수숫대 움막이 보였다.
그녀는 그리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나는 수숫대 틈으로 안을 들여다봤다. 카바이드 불에 큰 남자의 얼굴이 비쳤다.
여자가 밥을 가져다 먹이고 있었다. 치안대는 아니고 인민군대의 징집을 피해 숨어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의 말은 자세히는 들리지 않았으나 『총을 멘 사람들이 수십명 우리집에 왔는데 말소리를 들어보니 이남사람들이라 사람을 잡으러 온 것 같지는 않다』는 내용이었다.
밥을 다먹고 나더니 그만 남자와 여자가 밤일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나는 우리 대원을 데리고 그 자리를 떠났다. 숨어 있어도 애정을 통하는 그들이 나는 한편 부러웠다.
나는 몇해를 가정생활을 못하고 있으며 부모ㆍ처자의 생사도 모르고 있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생명을 걸고 있는가. 조국과 인민을 위해서 인가.
캄캄한 밤하늘에도 쌕쌕이는 쉬지않고 우리를 죽이려고 찾고 있었다. 수숫대 움막속의 부부 결합이 왜 그렇게도 부러운지. 나의 처와 아이들은 어디에서 남편을,애비를 얼마나 원망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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