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아버님 성묘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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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지난번 추석에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꼭 친정아버지 산소를 찾아 뵈 야겠다고 비장한 마음을 가졌었다. 결혼한지 6년이나 되었건만 남편은 아직껏 산소를 찾아가 보지 않고 있었다.
이유야 어떻든 서운한 일이었다.
더 큰 잘못은 내게 있겠지만 너무도 방관만 하는 남편의 태도에 종종 섭섭한 마음이 들곤 했었다.
다 같은 부모인데 시부모에겐 더할 수 없이 효자노릇을 하는 남편이나를 낳아 키워 주신 아버지께 소홀히 하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다.
다만 힘들고 고달픈 현실 앞에 몹시 지쳐 있는 남편의 모습을 볼 때면 정성 부족 때문이 아니라 시간에 쫓겨 사는 매일 매일의 생활 탓이라고 이해를 해 왔다.
여하튼 이번 추석연휴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성묘를 가야 한다고 한달 전부터를 노래를 부르다시피 했다. 친정 큰조카를 앞세우고 남편과 나는 설레는 가슴을 안고 수풀을 헤치며 산에 올랐다. 개구쟁이 두 아들은 마냥 신바람이 나서 벌써 먼저 올라가 있었다. 아버지의 묘 앞에 준비 해간 음식을 차려 놓고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불효자식을 용서해 달라고 빌면서 남편과 나는 조심스럽게 엎드려 인사를 드렸다.
아버님은 저 멀리 하늘나라에서 늦게나마 당신의 막내사위와 막내딸의 외손자를 둘씩이나 보시면서 기뻐하셨으리라.
식지 않은 이마의 땀방울을 두 손으로 닦아 내며 먼 허공을 바라보았다.
확 트인 맑고 깨끗한 하늘이 내 마음만큼이나 환하고 푸르렀다. 성묘를 마치고 돌아오는 발걸음은 무척 가벼웠다. 이제야 비로소 아버지의 막내딸로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런 말도 없이 걷고 있던 남편이 겸연쩍은 미소를 띠며 나의 어깨를 다독여 주었다.
이효숙<광주시 북구 중흥2동346의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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