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꿈나무] 야생마처럼 온 방으로 날뛰는 아이에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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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책하고 친하지 않은 아이에게 함축성 있는 시를 이해시키기란 뿔난 제비를 설명하는 것만큼 힘든 일이다. 그러니 아예 이해받기를 포기하자. 그냥 읽어주면 된다. 아이가 드러누워 발버둥을 치면 함께 드러눕고, 아이가 배를 밀고 탱크 놀이를 하면 같이 엎드려서 읽으면 그만이다.

"늘 그런 건 아니지만 가끔/ 빨간 불이 켜져 있는데 길을 건너고 싶어/ 가끔 학교에 가기 싫을 때도 있고/ 일부러 숙제를 안 하기도 해/ 갑자기 나보다 덩치가 큰 뚱보한테/ 괜히 싸움을 걸고 싶고 가끔/ 아무런 까닭 없이 찔끔 눈물이 나."

마치 아이들의 마음을 X-RAY로 찍어놓은 듯 적확하게 표현한 신형건 시인의 동시 '가끔'의 일부이다. 이런 시들을 조곤조곤 읽어주다 보면 어느새 아이들은 고요한 호수처럼 차분해져 시의 운율에 귀 기울이게 될지 모른다.

개구쟁이가 잠들고 나면 오늘도 전쟁 같던 하루를 무사히 끝낸 엄마들도 노곤해 질 것이다. 평화롭게 색색 잠든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어떤 말썽꾸러기라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인생이 짧고, 세월이 쏜살같이 흘러갔기 때문에/ 한 어린 소년은 너무도 빨리 커버렸지/ 그 아인 더 이상 내 곁에 있지 않으며/ 자신의 소중한 비밀을 내게 털어놓지도 않는다/ 그림책들은 치워졌고/ 이젠 함께 할 놀이들도 없지/ 다시 그때로 돌아가, 네가 함께 놀아 달라던/ 그 작은 놀이들을 할 수만 있다면"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열림원)에 수록된 작자 미상의 '성장한 아들에게'라는 이 시를 읽어주노라면 고단하고도 행복한 '엄마의 일상'을 살아낼 사랑의 에너지가 불끈 솟아나지 않을까.

아이들에게 읽어주면 좋은 동시집으로는 '풀아, 풀아, 애기똥풀아'(푸른책들) '개구쟁이 산복이'(창비) '산골아이'(보리) '참 좋은 동시60'(문공사) 등이 있다. 대상 연령은 발차기에 여념 없는 태아부터 석양빛의 노인까지.

임사라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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