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의 모든 노력 매도하진 말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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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국방은 보안의 종속개념이지만 안보의 핵심은 국방일 수밖에 없으므로 군의 역할과 책임은 언제 어느 사회에서나 막중하다고 할 수 있다. 즉 유능하고 건강한 군의 존재는 한 국가사회의 안전과 발전을 담보하고 기약해 주는 가장 확실한 토대며 전제라고 할 수 있다. 다라서 이러한 군의 역할이 가능케 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국민의 지지와 애정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유신이래 18년 동안 권력자들이 국민들의 민주화요구에 위기를 느낄 때마다 군을 정치에 이용함으로써 군이 국내정치에 휘말려 본의 아니게 국민과의 관계가 소원해져 왔고, 특히 80년 5·17과 광주항쟁을 거치면서 민·군의 갈등은 악화되어왔다. 그 결과 우리 국민들의 마음속에는 군과 권위주의적 정치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었으며 군이 마치 문민화의 시대적 대세에 역행하는 적대적 집단으로까지 인식되어 왔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6공 출범이후 우리사회가 처해있는 역사적 대전환기에 발맞추어 새로운 사고와 새로운 행동양식으로 무장, 군의 새 위상을 확립하기 위한 자기혁신과 자구의 노력이 군 내부에서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국민의 확고한 신뢰와 따뜻한 애정을 받는 국민의 군대로 거듭 태어나려는 과정 속에 발생한 보안사의 대국민 정치사찰 사건은 군이 군의 기본임무에만 전념하여 군 본연의 상을 확립하려는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로 어떤 이유로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된다. 제2의 창군이라고 불리는 군직제 개편을 통해 직업군인제의 확립, 군의 전문화, 군의 민간통제 강화를 추구해 나가려는 대세를 그르친 행위에 대한 비난은 군 스스로가 마땅히 감수해야하고 제도적 문제점 역시 당연히 개선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인해 국민의 군대, 선진군대로 태어나려는 군의 모든 노력이 일거에 매도되는 우를 범해서는 결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군의 건실한 역할과 이를 뒷받침할만한 국민의 지지가 과거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 시점에 이번 사건을 가지고 60만 전장병의 사기를 위축시키고 이질적 집단으로 몰아붙인다면 민·군이 하나 되어 가까워질 수 있는 길은 더욱 멀어지는 것이 아닐까 우려된다. <강기욱(서울 노원구 상계동 보람아파트209동10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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