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서 판문점까지… 이찬삼특파원 한달 취재기(다시가본 북한:1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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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주일마다 신자달라/평양 봉수교회/전에 없던 십자가ㆍ성가대 등장/모두 40대 이상… 통일노래도 불러
북한을 방문하는 남쪽 출신 해외교포들간에 가장 크게 의견이 엇갈리는 부분이 평양 봉수교회를 둘러싼 종교문제다.
「7ㆍ7선언」 이후 북한 당국의 본격적인 관광단 유치와 이산가족 재회 사업이 활발해지던 88년 10월23일에 창립된 이 교회는 그해 12월 기자의 첫 방북때 보다 여러 면에서 훨씬 세련된 분위기로 바뀌어져 있었다.
「광복거리」 입구 만경대 구역 건국동(구 봉수동) 보통강 줄기 외딴 언덕에 세워진 이 교회는 준공 당시 없었던 십자가가 지붕에 세워졌을 뿐 아니라 성가대도 생겼다.
평양 음악무용대 출신의 중ㆍ고교 여성 음악교사 15명으로 구성된 성가대는 서울의 여느 교회 못지 않게 훌륭한 「찬양」을 했으며 곡목도 남한 교회에서 흔히 부르는 『어지신 목자』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등을 택해 3부로 불렀다.
반주를 맡은 이창실 할머니(69ㆍ이화여대 피아노과 출신)도 찬송가의 전주ㆍ간주ㆍ후주를 능숙하게 처리해냈다.
이 할머니는 해방전부터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학창시절 서울에서 교회 반주경험이 많다고 했다.
성가대는 이 할머니의 반주에 맞춰 예배 분위기에 걸맞는 「은혜스러운」 모양새였으나 찬송곡을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기자는 이번 북한 취재 기간동안 거의 매주 이 교회예배에 참석했다.
○헌금도 거둬들여
범민족대회 전야격인 8월12일에는 3백여명이 교회를 가득 채웠으나 이후 참석자 수는 점점 줄어 마지막 주인 9월2일에는 교회당 절반이 비어 있었고 참석자도 매번 틀린 얼굴들이었다.
김일성 초상 배지를 가슴에 단채 교회에 나오던 것과는 달리 요즘에는 배지를 단 사람이 없었다.
예배에 참석한 북한사람 가운데 남녀의 비율은 1 대 5 정도로 여성이 많았다.
이들은 기도나 설교가 진행될 때 아무런 느낌이 없는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으나 『우리 민족이 하나되게 해달라』거나 『통일』을 강조하는 경우엔 힘차게 『아멘』이라고 소리쳤다.
1시간 동안 진행되는 예배에서 사상적ㆍ체제적 내용의 설교는 전혀 없었다.
신자들은 성경ㆍ찬송을 개인이 갖고 다니지 않고 빈손으로 예배에 참석,교회 좌석에 비치된 것을 사용했다.
오전 10시에 시작되는 이 교회 예배는 성가대의 전주에 이어 묵도ㆍ개회찬송ㆍ교독ㆍ예배찬송ㆍ기도ㆍ성경봉독ㆍ찬양ㆍ설교ㆍ찬송ㆍ헌금ㆍ감사기도ㆍ찬송ㆍ축도ㆍ송영 순으로 진행됐는데 감사기도 순서는 김영순이라는 여집사가 매주 독점했다.
김 집사는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시여,사랑과 믿음과 소망을 소중히 여기고 이땅에 평화와 통일을 갈구하는 우리 봉수교회 성도들이 자비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그 은혜 너무 고마워 할렐루야 주예수 그리스도를 찬미하고 지성담아 연보를 드렸나이다.
그러나 그 은혜에 비하면 너무도 적고 보잘 것 없는 연보는 믿음과 정성이 부족한 죄이오니 십자가 보혈로 씻음받게 해주옵소서. 정의와 진리로 백성들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시여,어찌하여 남녘의 동포들과 함께 기도드릴 수 없나이까. 비통한 마음 사무치나이다』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다.
예배가 끝난 후 성가대는 『우리 다시 만나 볼 동안』 찬송을 부르며 신자들이 서로 손을 잡게한 후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합창했다. 이때마다 교포들과 북한 사람들은 울음바다를 이뤘다.
이런 분위기에서 봉수교회에서 한 두차례 예배를 보았던 재미교포 신도들은 『북한에도 종교의 자유가 있으며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린다』고 감격해 하거나 『뭔가 이상하다』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측으로 나뉘어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주체사상과 상통”
예배에 함께 참석했던 북한측 안내원은 『난생 처음으로 교회에 와 봤다』면서 큰 관심을 보였다.
안내원은 『왜 일요일에만 모입니까』 『돈은 왜 거둬갑니까』 『이 선생도 매주 예배를 봅니까』 등의 질문을 했다.
이처럼 봉수교회 밖에서 만난 북한 사람들은 『이미 세상을 떠난 보이지 않는 예수를 섬기는 것이 얼마나 머저리짓입니까』라는 반응을 보였다.
「조선기독교도련생」의 한 관계자는 『「메시아 왕국」을 이땅에 건설하자는 뜻은 위대한 어버이 수령 김일성 동지의 주체사상과 흡사하지 않습니까』라며 『성서에 나타난 예수도 혁명가며 수령님도 혁명가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예수와 수령,성경과 주체사상중 어느 부분이 우위에 있느냐』고 묻자 그는 망설임없이 후자를 택했다.
그는 또 『전인민이 흠모한다는 김일성 주석을 배제한 예배가 이곳에서 용납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성부ㆍ성자ㆍ성령」 3위 일체를 믿는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당과 인민ㆍ수령이 3위일체가 되어 있다』며 기독교정신이 곧 주체사상으로 통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에는 「종교의 자유」를 널리 인식시키기 위해서 인듯 평양시에 봉수교회ㆍ장충성당을 지은 후 제2의 교회인 칠골교회 건립 공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최근 김일성 종합대에 종교학과가 신설되기도 했다.
「조선기독교도련맹」은 최근 신ㆍ구약 성서와 찬송가를 자체 발행했다.
앞서의 「련맹」 관계자는 또 북한내에 10여명 단위의 가정예배모임이 전국 각지 수백군데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소개했으나 가정예배에 참관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제2교회 공사중
봉수교회는 남한 교회처럼 어린이 주일학교나 학생회ㆍ청년회ㆍ전도회 등의 산하조직들이 있었고,신도는 모두 40대 이상이었다.
이러한 북한교회의 특이성 때문에 이 교회에서 자주 예배를 보았던 재미교포 방문단들중 일부는 북한교회가 자발적인 참여에 의한 「신앙의 교회」가 아니라 당국에 의해 억지로 조직되었거나 동원된 「교회일터」에 불과한 것으로 여겼다. 북한에서는 실제로 교회에 하루 나가는 것을 근로장에서 하루 작업을 한 것으로 계산해 주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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