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의지 다시 다짐해야/문책인사가 심기일전의 계기되기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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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제6공화국 정부는 언제까지 5공식 정치행태에 자족해 있을 생각인가.
노태우 대통령은 6공을 출범시키면서 분명히 5공 잔재를 청산하고 민주화 개혁을 자신의 주된 사명으로 다짐했다. 그러나 6공 핵심세력은 과거청산 약속을 구두선쯤으로 여긴 채 참다운 개혁의지를 확고하게 드러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성급한 3당 합당으로 인해 공직사회에 정권수뇌부의 진의가 수구인지 개혁인지 혼돈을 낳게 하지 않았는가.
오늘 우리 사회가 당면한 본질적 위기상황은 바로 6공 수뇌부의 이같은 고식적 체질에서 비롯된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국민 보다 한발 앞서는 개혁의 청사진을 갖고 흔들림 없이 나라를 이끌어 가야 할 공직사회가 권력상층부에 대한 맹목적 과잉충성에 매달리는가 하면 기강와해ㆍ책임회피ㆍ무사안일로 지새우게 한 사태도 6공 수뇌부의 그런 엉거주춤한 자세에서 비롯된 것이다.
건설부 직원의 집단항명,항의에 겁먹고 허겁지겁 현장을 모변하는 데만 급급했던 장관들과 도백의 비겁함이나 보안사의 민간인사찰 관행의 지속 사태 등의 근본원인도 그런 상층부의 분위기 속에 있는 것이 아닌가.
여당 수뇌부의 끝없는 자중지란,그것도 국정의 큰 방향과는 전혀 관계없는 파쟁성 문제를 갖고 티격태격하는 행태에 국민들은 신물이 날대로 나있다.
이 모든 사태의 빈발은 6공 수뇌부의 중심과 개혁의지가 불분명한 데에 그 뿌리가 있음을 당사자들은 깨달아야 한다. 그럼에도 정부와 여당이 이번 보안사 사건을 책임자의 인책과 조직의 일부 개편선의 고식적 방법으로만 해결하려 한다면 국면을 일시적으로 미봉하는 것에 불과할 뿐임을 직시해야 한다.
따라서 근원적인 문제는 6공 핵심이 이 난국을 참다운 민주화 개혁의지를 갖고 정면으로 뚫고 나가겠다는 결연한 자세를 보이면서 그것이 겉치레 아닌 진의임을 확실히 해야 한다.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만 해도 여권수뇌부가 반대진영 또는 경쟁상대에 대한 정보선호와 정보기관끼리의 경쟁의식 고취의 구습을 과감히 탈피했더라면 과연 과거 관행대로 지속되었을까를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보통사람의 시대를 내세우면서 민주화 개혁에 앞장서기로 천명했던 6공 정부는 마땅히 공약이 확고함을 끊임없이 행동으로 보여줬어야 했다. 그렇게 했더라도 민주화 개혁은 여러 시련을 맞았을 터인데도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공직사회는 계속 5공식 발상에 안주해 오면서 민주화 개혁은 겉으로만 내세우는 행태를 보여온 것이 아닌가.
따라서 정부ㆍ여당은 이 위기상황을 나라와 민족의 전화위복의 계기로 승화시키기 위해 이번 사건을 맞아 결연한 자기정화 의지의 확립을 통해 사회 각 부문의 민주개혁을 유도할 수 있는 쇄신책을 제시,과감하게 실천해야 한다.
그리고 야권도 『세계는 지금 지각변동이라는 말을 가지고도 부족할 정도의 격변의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는 김대중 평민당 총재의 현실인식에 바탕한다면 무한 극렬투쟁으로 사회불안을 한층 증폭시킬 수는 결코 없을 것이다.
지각변동 이상의 격변에 처한 국제정세의 전개 과정에서 우선 우리 사회와 민족이 살아 남고 번영할 방도를 찾는 이상의 화급한 일이 또 어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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