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폐쇄외교 빗장풀기 고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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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중ㆍ소 독점외교 무너지자 일에 손짓/바깥바람 타고 체제 붕괴될까 우려
북한은 지금 여러가지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밖으로는 한소 수교와 더불어 한중 수교 마저 시간문제로 되어 있어 외교적 고립을 탈출하기 위해선 45년간 지탱해온 대 서방 폐쇄외교를 근본적으로 수술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소련ㆍ동구의 변혁을 가져온 거대한 물결을 헤쳐나가면서 김일성 주체사상을 축으로 하는 공산권력 세습을 해나가겠다는 북한의 「곡예」야 말로 온세계의 흥미거리다.
설상가상으로 북한은 경제난이 막다른 골목에 다다라 외교ㆍ내정ㆍ경제의 3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북한이 가장 먼저 손을 댄 것이 대 서방외교 빗장을 조금씩 여는 이른바 「남방외교」다. 물론 여기엔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개방과 자유의 바깥바람이 체제를 다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중국ㆍ소련에 대한 독점적 외교관계가 무너진 것을 확인한 북한은 마치 남한이 중국에 앞서 소련을 선택했듯이 미국과 일본 중 여러사정이 손쉬운 일본과의 관계정상화를 먼저 도모하고 있다.
북한이 일본을 접근대상으로 선택한 것은 한소측에 대항한다는 외교목적 외에도 일본의 경제력을 끌어들여 파국 직전의 경제를 기사회생시켜 보겠다는 계산 때문이다.
북한은 일본으로부터 빌린 6백억엔을 탕감받고 식민지배,전후손실에 대한 배상명목으로 50억달러 규모의 경협자금을 받아내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은 그러나 일본과의 수교가 결국은 미ㆍ소ㆍ중ㆍ일 4강에 의한 남북한 교차승인을 수용하는 것이 되고 이는 자연히 두개의 조선을 인정하는 모양이 돼 그들의 「하나의 조선」정책을 어떤 명분으로 수정해야 할지 큰 부담을 안게 된다.
따라서 북한은 대일 수교라는 원칙은 천명했지만 정작 수교까지 이르는데는 적지 않은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남방외교의 또다른 공략목표인 대미 관계개선은 일본과의 관계보다는 훨씬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과제다.
대 북한 관계를 세계전략적 관점에서 파악하고 있는 미국은 북한에 대해 ▲핵시설 조사를 허용하는 핵안전협정체결 ▲테러행위포기 ▲성의있는 남북대화 참여 ▲6ㆍ25 실종미군의 유해송환 등을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요구해 왔다.
북한은 최근 비공식 외교경로를 통해 미측에 『테러반대 입장을 표명하는데는 문제가 없고 핵안전협정체결은 비공개대화로 논의할 수 있다』는 메시지와 함께 『미의 대 이라크 금수조치에도 동의한다』는 적극적인 화해제스처를 보내오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의 부분적 제스처에도 불구,대 북한 대화에는 신중히 대처한다는 방침이어서 북한의 대미 관계개선은 구체적 결실을 보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판단된다.
북한은 이렇듯 외교변화를 추진하면서도 변화에 대한 기대보다는 바깥바람이 내부체제를 붕괴시키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 더 신경이 가 있다.
우선은 바깥바람의 불가피한 유입에 앞서 내부결속을 다지기 위해 주체사상 등 사상무장을 강화하고 있다.
이같은 변화가 남북 대화에 임하는 북한의 태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북한은 미ㆍ소ㆍ중으로부터 남북 대화에 임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고 대화자체를 거부할 뚜렷한 명분도 없어 대화는 계속 유지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김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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