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일 6개월 전부터 비밀접촉/일 언론에 보도된 「수면하 외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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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실무자 따돌리고 북경서 협상/소 외무는 “지금이 북한문 두드릴때”조언/김일성도 자민파벌 겨냥 사실 공개
북한­일본간 국교수립 기본합의에 앞서 반년전부터 평양ㆍ동경 요인들의 물밑(수면하) 접촉이 있었다는 사실이 점차 드러나고 있다.
나카야마(중산) 외무장관이 지난 5월중순 북한­일 국교정상화에 대비한 「극비준비작업」을 동북아 과장에게 은밀히 지시한 것으로 밝혀졌다.
1일 마이니치신문 보도에 따르면 나카야마 외무장관은 이때 『한국정부와 가졌던 정상화 교섭자료를 준비,일조(북한) 문제에 대비하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회당 후카타(심전) 국민운동국장이 평양방문 결과를 나카야마에게 보고한 직후의 일이다. 평양측은 후카타편에 사죄ㆍ배상ㆍ적대 정책의 시정 등 3개항을 국교정상화의 전제조건으로 일측에 제시했다.
조선노동당 허담 정치국원(당시)이 『이들 조건을 일본이 실천하는지를 지켜본후 여름이나 가을중에 적극적 행동을 전개한다』는 말까지 전달되었다.
이후 대북한 준비작업은 「극비」의 딱지가 붙여져 진행되었고 가이후(해부)총리,가네마루(금환) 전부총리,오자와(소택) 자민당 간사장,사회당의 다나베ㆍ후카타,그리고 나카야마 외무장관 등 6인으로 「1급비밀」 취급자가 제한됐다.
나카야마 외무장관은 지난달 4일 방일한 셰바르드나제 소 외무장관으로부터도 모종의 암시를 전달받은 것으로 보인다.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은 일본 방문 바로 직전 평양에서 있었던 김영남 외교부장과의 회담상황을 전하면서 북한­일 관계개선을 지적,『지금이 북한의 문을 두드릴 기회』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무렵 다케시타(죽하) 전총리의 북경내 동정도 눈길을 끈다.
다케시타는 가네마루 방북단이 평양을 떠나기 직전인 9월21일 북경시내에서 이종옥 북한 부주석과 접촉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다케시타 자신은 이 사실을 감추고 있었지만 김일성이 이를 공개한 것도 흥미롭다.
지난달 26일 김일성은 가네마루 환영 오찬회 석상에서 『부주석으로부터 다케시타와 북경에서 회담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일조 관계개선을 위해 다케시타도 최대한의 노력을 한다고 말했다더라』고 밝힌 것이다.
한 일본 신문은 김일성이 가네마루와 다케시타가 한 정파에 속하면서도 라이벌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다케시타 얘기를 일부러 꺼낸 것이 아니냐는 주석까지 덧붙였다.
북한과의 사실상 연락창구였던 사회당 다나베(전변) 부위원장은 일찍부터 북한이 국교정상화 제안을 할 것으로 심증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미 지난 7월 사회당의 기관지에 북한측이 반대해온 「남북 교차승인」을 지지하는 내용의 논문을 기고,관심을 끈 바 있다.
그러나 일본정부(외무성)를 사실상 대표한 가와시마(천도) 아시아국 심의관등 보좌관들은 이같은 사전정보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이 확실하다. 27일 있었던 정부간 협의석상에서 북한측 천용복 아시아국 부국장은 『당분간 민간베이스라도 연락사무소를 설치라면 어떤가』는 가와시마의 제의에 『그보다 양국간 외교관계 속에서 대응하고 싶다』고 말했다.
가와시마는 『그러나 북조선(북한)은 지금까지 일본과 한국이 관계를 맺고 있는 한 일조간 국교정상화는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았는가』고 「물밑」변화와 겉도는 발언을 계속했다.
가네마루는 방북전 소극적 대북 자세를 견지하는 외무성관리를 통칭,「석두」라고 일갈했다. 이제서야 가네마루 호통의 뜻을 알겠더라는게 일본 기자들의 뒤늦은 소감이었다.<동경=방인철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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