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 못 버린 '노무현식 평화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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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노무현 대통령이 또 다시 '평화론'을 강조했다. 6일 한명숙 총리가 대신 읽은 새해 예산안 제출과 관련한 시정 연설에서다. 국정운영 방향을 제시하는 시정연설문은 총리실에서 주도적으로 작성했지만, 청와대 비서실의 검토를 거쳐 문안이 최종 확정됐다.

노 대통령은 "북한 핵실험으로 야기된 한반도의 위기는 반드시 평화적 방법으로 풀어야 한다"며 "평화는 모든 것에 우선하는 최상의 가치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정책의 속도와 범위는 조절하되, 큰 틀에서 대북 평화번영정책의 기본 원칙은 지켜나가겠다"며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북한과 대화의 끈을 놓아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이런 언급은 "북한과의 관계를 우호적으로 유지해 나갈 것"이라는 2일 외국인 투자 유치 보고회에서의 발언과 맥을 같이한다.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평화의 전략'을 재차 강조한 셈이다.

노 대통령은 특히 "유엔 안보리 결의안 정신과 취지에 부합하는 방향에서 북한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을 지속할 것"이라며 "이들 사업은 한반도 평화와 안정의 상징"이라고 말했다. 북 핵실험 이후 노 대통령이 두 사업의 지속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핵실험에 따른 구체적인 대북 제재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유엔 안보리 결의를 충실하게 준수하기 위해 관련된 제반 법령들을 점검하고 필요한 부분은 보완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고만 말했다.

정부 당국자는 "포용정책의 지속여부를 놓고 상당한 논란이 있었는데 북한의 6자회담 복귀 선언으로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됐다고 보고 보다 분명하게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나라당과 일부 외교안보전문가들은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토대로 한 대북 제재는 외면한 채 북한과의 대화에만 매달리고 있다"며 비판적 시각을 보였다. 유기준 한나라당 대변인은 "핵실험이라는 미증유의 국가 위기가 초래됐음에도 노 대통령은 대북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수정 없이 평화적 해법이라는 공허한 구호만 반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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