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인권위, 이제야 북한 인권에 눈 뜨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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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국가인권위원회가 북한 인권에 대해 처음으로 입을 뗐다. 북한의 정치수용소와 공개처형을 비판하고 이 정부의 북한 인권 논의 기피 풍조를 개탄하는 단행본을 발간했다. 인권위가 북한 인권에 침묵해 왔던 점에 비춰 보면 큰 변화다.

이 책은 인권위가 국내 법학교수와 북한 전문가 8명에게 의뢰해 만든 북한 인권 연구서다. 한 연구자는 "북한 정치범 수용소는 임산부와 영아 살해가 이뤄지는 인권 침해의 종합창고"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연구자는 "북한 인권 개선 노력이 북한 체제를 위협한다고 가정해 논의를 기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한국은 호혜 차원의 경제 지원과 인권 개선 설득을 병행하는 원칙을 수립해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북한 인권에 대해 입장을 내는 것은 고사하고 우리 정부에 간접 권고할지 여부도 결정하지 못했다. 최근에는 북한 주민의 공개 총살형을 막아 달라는 진정을 각하(却下)했고, 조직 내부 갈등 때문에 조영황 전 위원장이 돌연 사퇴하면서 무용론까지 제기됐다.

이번 책은 인권위가 자발적으로 내놓은 북한 인권 관련 첫 자료집으로, 문제 해결을 위한 시발점이 될 수 있다. 특히 지난달 말 취임한 안경환 위원장의 최근 행보와 맞물려 인권위의 변화 가능성이 엿보인다.

안 위원장은 취임사.국정감사 등에서 "적절한 절차를 거쳐 (북한 인권에 대한) 위원회 의견을 이른 시일 안에 정리하겠다"고 말했다.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는 "북한 인권에 대해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다"면서 "올해 안에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북한 인권은 보수나 진보의 문제가 아닌,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다. 그래서 지난달 말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작가 엘리 위젤과 바츨라프 하벨 전 체코 대통령 등 3명이 북한 인권문제와 관련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나설 것을 촉구했던 것이다.

인권위는 이번 자료집 발간을 계기로 더 이상 청와대 눈치를 보지 말고 북한 인권 문제를 정면 돌파해야 한다. 이번에도 어물쩍 넘어간다면 존립 근거를 완전히 상실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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