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그루지야 '가스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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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러시아와 이웃 그루지야가 '가스 전쟁'을 벌이고 있다. 2004년 미하일 사카슈빌리 대통령의 집권 이후 친(親)서방 성향을 강화하고 있는 그루지야가 9월 말 러시아군 정보장교 4명을 간첩 혐의로 체포하면서 불붙은 양국 간 갈등이 에너지 분쟁으로 비화하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가 그루지야에 공급해온 천연가스 가격을 내년부터 두 배 이상 올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자 그루지야는 러시아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저지하겠다며 맞대응에 나섰다. 올해 초 러시아가 역시 친서방 성향을 보이는 우크라이나에 가스 공급을 일시 중단하며 촉발됐던 사태와 유사한 상황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주라브 노가이델리 그루지야 총리는 4일 러시아의 가스가격 인상 요구와 관련, "(옛 소련 지역) 모든 국가에 적용되는 상업적 가격이라면 모르나, 그루지야에 대한 징벌적 가격이라면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일 러시아의 국영 가스회사 가스프롬이 2007년부터 대(對)그루지야 가스 공급가를 현행 1000㎥당 110달러에서 230달러로 인상하겠다고 밝힌 데 대한 반발이었다.

총리는 "값비싼 러시아 천연가스 대신 터키.아제르바이잔.이란 등에서 가스를 도입하기 위한 협상을 진행 중"이라며 "가장 유리한 가격을 제시하는 국가로부터 수입할 것"이라고 역공을 취했다.

그루지야는 전체 가스 소비량 연 20억㎥ 가운데 18억㎥를 러시아로부터 수입하고 있다. 가스프롬이 그루지야에 제시한 가격은 옛 소련권 국가 공급가 중 가장 비싼 것으로 유럽 수출가격(1000㎥당 230~250달러)과 비슷한 수준이다. 명백히 그루지야에 대한 러시아의 불만이 반영된 가격이다.

이에 앞서 겔라 베주아슈빌리 그루지야 외무장관은 2일 러시아의 가스가격 인상 계획 발표 직후 "가스프롬의 조치는 경제적 이유보다 정치적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러시아의 WTO 가입에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러시아는 그루지야를 비롯해 미국.몰도바 등과 WTO 가입을 위한 양자협정 체결을 앞두고 있다.

러시아는 그러나 이번 기회에 삐딱하게 나가는 그루지야에 단단히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계산이다. 앞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러시아 정보장교 체포로 악화된 양국관계 정상화를 위해 지난달 31일 모스크바를 찾은 베주아슈빌리 그루지야 외무장관의 면담 요청을 거부하기도 했다.

유철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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