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총장 "법원이 중수부 수사 견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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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스타의 외환은행 헐값 매입 및 외환카드 주작 조작 의혹 사건'에 연루된 피의자들의 신병처리 문제를 놓고 검찰과 법원이 마찰을 빚고 있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청구한 엘리스 쇼트(46) 론스타 부회장과 마이클 톰슨(45) 론스타 아시아지역 고문변호사에 대한 체포영장, 유회원(55) 론스타어드바이저코리아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이 3일 새벽 법원에서 기각당한 게 발단이다. 이들은 외환카드의 주가를 조작한 혐의(증권거래법 위반)를 받고 있다.

정상명 검찰총장은 이날 오전 대검 중수부 수사팀과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법원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중수부 수사를 견제하고 있는 것 같다"며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고 한다. 이어 대검 중수부는 쇼트 부회장과 톰슨 변호사에 대한 체포영장, 유회원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된 지 11시간 만에 다시 청구했다. 채동욱 수사기획관은 "세 사람에 대한 영장을 토씨 하나 고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증거자료를 보완하지 않은 채 기각된 영장을 재청구하기는 검찰 사상 처음이다. 중수부는 영장이 두 번째로 기각되더라도 재청구할 방침이다.

서울중앙지법은 '영장재판 논란에 관한 입장'이라는 발표문을 내고 "법원의 결정에 대해 수사 관계자들이 헌법과 법률에 규정한 역할을 무시하는 듯한 비법률적인 발언을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중앙지법은 이날 현대.기아차그룹의 채무 탕감과 관련해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변양호 전 재경부 국장, 박상배 전 산업은행 부총재 등 8명을 보석으로 석방했다.

문병주 기자

[뉴스 분석] "남 장사에 인분 붓나" "인분 같은 소리하네" 험악한 말싸움까지

이번 '무더기 영장 기각 파동'은 이용훈 대법원장의 '검찰 비하성 발언'과 '공판중심주의 논란' 이후 한동안 잠복했던 검찰과 법원의 마찰이 다시 불거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대법원장은 9월 "검찰이 작성한 수사 기록을 던져버려라"라며 "검찰과 갈등이 있더라도 영장 발부를 신중히 해야 한다"고 말해 검찰의 강한 반발을 샀다. 또 '재판정에서 유.무죄를 판단한다'는 공판중심주의를 강조하며 검찰의 구속수사 관행에 제동을 걸 필요가 있다는 점도 시사했다.

그러나 검찰은 이 대법원장의 발언 배경에는 법조비리 수사에서 차관급인 조관행 전 고법 부장판사를 겨냥했다는 불만이 깔려 있다고 봤다. 법정 중심, 불구속 수사 원칙은 힘의 균형을 법원으로 옮기려는 시도로 해석했다.

쇼트 부회장 등에 대한 영장 기각은 이 연장선에 있다고 검찰은 판단한다. 이인규 서울중앙지검 3차장은 "이쯤 되면 남의 장사에 소금을 뿌리는 정도가 아니라 인분(人糞)을 들이붓는 수준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에 이상훈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은 "검찰에 인분 냄새가 진동하겠네. 정말 인분 같은 소리를 하고 있다"고 맞받았다.

검찰이 무리수를 뒀다는 지적도 있다. 검찰 일각에선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은 입증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당시 악화하는 경영 사정을 감안할 때 외환은행의 조속한 매각이 불가피했고, 외환카드가 자본 잠식 상태에 빠져 감자(減資)를 통한 합병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은 이번 파동을 중수부의 수사를 무력화하려는 법원의 의도가 담겨 있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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