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부동산 정책 이제 와서 실패했다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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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부가 일주일 만에 다시 부동산 대책을 내놨다. 이 정부 출범 이후 내놓은 크고 작은 부동산 대책이 이미 서른 가지가 넘는 판에 또 대책이라니 도대체 몇 번째인지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부동산 정책의 결정판이라는 8.31 대책 이후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대책을 내놓는 걸 보면 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실패했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동안 부동산 정책을 막후에서 주물러 온 청와대 실무 주역조차 "(부동산 정책이) 결과적으로 실패했다"고 자인했을 정도다. 그러나 그저 그뿐이다. 각종 규제와 세금 폭탄으로 온 나라를 들쑤셔 놓고는 이제 와서 실패했다면 어쩌자는 말인가. 부동산 정책을 진두지휘한 정문수 청와대 경제보좌관은 "부동산 전문가가 아니다"며 발을 뺐다. 그게 그동안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휘둘리다 지친 국민에게 할 소린가.

부동산 정책의 약발이 안 듣는 이유는 잘못에 대한 진단과 반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헛발 짚는 대책과 땜질식 처방의 악순환이다. 정책 당국자라는 사람들은 정책의 실효성과 국민의 불편은 아랑곳없이 오직 대통령의 말 한마디를 좇아 무작정 내달리는 들소 떼처럼 정책을 펴 왔다. 한참을 달리다 잘못된 길에 들어섰다는 지적을 받았지만 어디서부터 왜 잘못됐는지 모른다. 그러고는 전문가가 아니어서 모른다거나, 실패했다면서 책임은 지지 않는다.

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실패한 근본 원인은 처음부터 정책의 목표를 잘못 잡은 데다, 시장을 무시한 규제 일변도의 정책 수단으로 일관한 데 있다. 돌이켜 보면 이 정부가 출범할 무렵 부동산 문제는 이처럼 시끄럽지 않았다. 그저 강남의 일부 아파트값이 올랐을 뿐이다. 정부 스스로도 극히 제한적인 국지적 현상이라고 했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이 강남 불패의 신화를 깨겠다고 나서면서 갑자기 최대의 정책과제가 돼 버렸다. 서민 주택의 안정과 아무 관련이 없는 강남의 아파트값 잡기에 정권이 사활을 걸고 매달린 결과가 지금까지 나온 대책들이다. 여기에 동원된 정책 수단이 시장을 압살하는 온갖 규제와 징벌적인 세금중과였다. 그 후 시장과 정부의 숨바꼭질은 정부의 일방적인 판정패였다. 그 과정에서 정책에 대한 불신은 커져만 갔고, 잠잠하던 지역마저 부동산값 폭등세가 확산됐다. 당초 겨냥했던 강남 집값은 잡지 못한 채 온 나라의 집값에 불을 지른 것이다.

지난주와 이번에 나온 대책도 번지수를 잘못 짚기는 마찬가지다. 마지못해 공급을 늘리는 쪽으로 방향을 틀기는 했지만, 수요와 동떨어진 신도시 건설이나 인위적인 분양가 인하로는 들불처럼 번진 부동산값 상승세를 꺾지 못한다. 정부는 우선 눈앞의 부동산값 등락에 일희일비하는 조급증부터 버려라. 그리고 부동산 정책의 실패 이유를 차분히 반성해 볼 일이다. 기존 정책을 고집하거나 새로운 대책을 내놓을 게 아니라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는 게 먼저다. 재건축 억제, 인위적인 분양가 인하, 양도세 인하 불가, 고가 주택과 다주택자 세금중과, 아파트 원가 공개 등 시장원리에 맞지 않는 규제부터 전면 재검토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