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거리…관리방안 없이 나무만 방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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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한 포털사이트에서 네티즌이 가장 많이 찾은 기사는 '단풍.열매의 거리'였다. 김현아 씨(37.양천구 목동)는 아들(8)에게 체험학습을 시켜주기 위해 이중 한 곳인 강동구의 성내길을 찾았지만 실망만 안고 왔다. 그는 "가을의 낭만을 아이와 함께 즐기기 위해 나왔는데 말라비틀어져 죽어가는 나무만 있었다"며 "차라리 홍보하지 않는 것이 열매를 따가는 비양심자들로부터 나무를 보호하는 길"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강동구 신명초등학교 성내길

최근 서울시가 모과나 감 등을 볼 수 있는 '열매의 거리' 8곳을 선정해 시민들에게 홍보했지만 정작 이곳을 찾은 시민들은 흉물로 변해가는 유실수들이 거리 미관을 크게 해친다며 불만을 쏟아냈다. 지난 2000년 종로구 일대 4곳의 가로변에 사과.감.모과나무 5000여 그루를 가로수로 채택하면서 유실수 심기가 지자체마다 유행이 됐다. 유실수 심기 붐 이후 5~6년이 지난 현재 감나무.모과나무의 열매들은 '마지막 잎새'처럼 한 두개만 매달려 있었고, 시민들이 열매를 따가기 위해 꺾어 놓은 나뭇가지는 여기저기 버려진 채 나뒹굴고 있었다. 하지만 서울시와 각 지자체는 뚜렷한 관리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법적으로는 유실수 열매를 따갈 경우 경범죄 또는 형법상 절도에 해당돼 처벌받지만, 이를 제대로 알고 있는 시민은 많지 않다.

서울시 푸른도시국 조경과의 담당자는 "사실상 관리는 되지 않는다. 밤에 잠을 자지 않고 지킬 수도 없는 노릇이고 봉사대를 동원할 수 있는 예산도 따로 책정하지 않았다"며 "각 지자체가 관할하는 사안이기 때문에 시 차원에서 별도의 유실수 관리계획은 세우지 않았다"고 밝혔다.

양천구 신트리공원

애초 시민들의 무단 훼손으로부터 보호 관리가 어려운 유실수를 가로수로 쓰자고 한 정책 입안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유병림 교수는 "가로수로 유실수를 심으면 사람들의 손을 쉽게 타기 때문에 선진국에선 그런 사례가 거의 없다"며 "관리 방안이 뒷받침되지 않은 단순 아이디어를 행정으로 옮기다보니 이런 어처구니 없는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또 도시조경 전문가 김현수씨는 "차라리 유실수를 시민공원 등 한 곳에 옮겨 심어 집중관리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조언했다.

양천구의 한 관계자는 "열매를 보면 따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인데 시민의 양식만 믿고 적절한 관리 방안도 없이 유실수를 심어온 것 자체가 전형적인 보여주기식 탁상행정"이라고 꼬집었다.

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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