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촌대책 장기적 안목으로/단기대응으로 근본 흐려서는 안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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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0일 농림수산부가 발표한 농어촌대책은 농림수산부 스스로가 밝혔듯이 우루과이라운드 출범에 대비한 근본적 대책이 아니라 날로 높아가는 농어민들의 불만을 달래기 위한 임시방편적 단기대책이라는 성격을 띠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월의 농어촌종합대책이 발표된 지 5개월 만에 이같은 조치가 나오게 된 배경은 지난번의 종합대책이 피부에 닿는 가시적인 내용을 결여하고 있어 농민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 만큼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도백들의 건의에 따른 것으로 들린다.
조치가 나오게 된 배경이야 어쨌든 이번 대책은 평소 농민들이 느끼고 있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대목이 적지않게 눈에 띈다는 점에서 일단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만하다.
특히 농지전용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허가권을 시ㆍ도지사나 군수등에게 이양한 것은 잘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농지이용에 대한 불필요한 규제를 풀고 허가권을 이양하는 것은 앞으로 닥칠 농업의 경쟁시대에 농민들이 창의력과 의욕을 발휘할 기회를 늘린다는 점에서나 지방화시대에 대비한다는 차원에서나 필요불가결한 조치라고도 할 수 있다.
농산물 수입관세나 배합사료등 농축산물관련 기자재에 대한 부가가치세 징수로 들어오는 재원을 농어촌투자에만 활용하겠다는 것도 농산물개방 피해를 관련 조세수입으로 보상한다는 차원에서만 보면 설득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대책이 나오게 된 과정과 그 내용을 지켜보면서 우리가 걱정스럽게 느끼는 것은 심각한 국면을 맞고 있는 농업문제를 다루는 정부의 자세가 과연 이번처럼 난처한 입장이나 넘기고 보자는 식의 얄팍한 동기에 좌우되어서 되겠느냐는 점이다.
물론 농림수산부의 설명대로 우루과이라운드에 대한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대책은 협상이 아직 진행중이고 또 농림수산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 전체가 지혜와 힘을 모아 대비책을 강구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시기를 협상이 결말난 이후로 미룰 이유는 없다고 본다.
협상이 진행중이라 해도 그 방향이나 우리 농촌에 미칠 영향은 충분히 예견되고 있는 만큼 대책을 세우는 일은 오히려 늦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정부가 이미 대책을 마련하고 있으면서도 협상전략 때문에 그 내용을 밝히지 않고 있을 수 있다는 점도 생각할 수 있고 또 그러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수입개방에 대한 단기대책은 종합대책의 줄거리를 벗어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이번 대책에 우리가 정부의 자세를 걱정하는 것은 그같은 안목을 결하고 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그 단적인 예가 바나나ㆍ파인애플 등 열대작물에 대한 전기료 인하혜택이다.
이 일은 비록 작은 일이지만 정부의 농업정책이 과연 경쟁력있는 작목과 없는 작목,보호해야 할 작목과 그렇지 않은 작목을 구분해볼 생각이나마 갖고 있는지를 의심케 한다.
근본대책의 그림 없이 단기대책에 치중하는 것은 앞으로의 정책대응에서 선택의 폭을 좁히고 자칫 시행착오로 인한 국민의 신뢰상실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관세ㆍ부가가치세 징수분의 농업투자 전용도 그 나름의 명분은 인정되나 국가재정 운용의 경직성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은 고려돼야 한다. 국가사업이 분야별로 세원을 마련해 자기 일에만 충당한다는 식으로 운용되는 경향을 띨 때의 위험성도 작은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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