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론」(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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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세계의 풍속사를 보면 물을 신성시하는 민족이 의외로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물로 몸을 씻는 행위는 단순한 목욕의 의미를 넘어 하나의 경건한 의식으로 통했다.
우리 민족도 예외는 아니다. 예부터 우리 풍습에는 조상의 제사를 지낼 때나 큰 행사를 치를 때면 으레 목욕제계하여 몸과 마음을 청정하게 했다.
특히 종교에서의 목욕의식은 절대적인 것이어서 몸을 씻는 행위는 곧 신의 곁으로 가까이 가는 것을 의미한다.
힌두교에서는 갠지스강에서 몸을 씻는 것은 속세의 죄를 씻는 것과 같은 것으로 여긴다. 이슬람교에서는 사원앞에 목욕장이 있어 참배하는 사람은 반드시 목욕을 해야 한다.
기독교에서는 세례 또는 침례를 중요시하는 종파가 있어 목욕을 경건한 의식으로 삼고 있다.
목욕은 사람의 몸을 깨끗이 해줄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깨끗이 해준다. 그러나 그 목욕이 환락과 쾌락의 수단으로 전락,나라를 망치게 한 경우도 있다. 로마제국의 멸망이다.
그 사치를 극한 로마의 퇴폐목욕풍조가 오늘 우리 사회 일각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적당한 목욕은 심신의 피로를 풀어주고 신진대사를 촉진시킴으로써 일의 능률을 높여주는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최근 색다른 「목욕론」이 등장하여 관심을 모으고 있다. 바로 포철을 세계 굴지의 기업으로 키우고 지금은 민자당최고위원으로 있는 박태준회장이 곧 출간할 저서 『깨끗한 생활』에 나오는 얘기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충 대충 넘어가는 습관이 몸에 배어있다. 한번 시작한 일을 완벽하게 마무리지으려면 머리가 정돈돼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목욕을 해서 몸이 정리된 상태라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래서 박회장은 포철에 호텔급 샤워시설을 갖추고 종업원들에게 일이 끝나면 꼭 샤워를 하고 퇴근하라는 「엄명」을 내렸다고 한다. 쇳물냄새 대신 비눗물냄새를 풍기며 귀가해야 하는 것이다. 『자기 몸에 때가 있고 옷에 기름이 묻어있으면 아무데나 앉게 되고 무엇이든 만지려고 해 좋은 제품이 나올 수 없다』는 게 그의 「목욕론」 요지다.
「포철의 신화」는 바로 이같은 「목욕철학」에서 나왔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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