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환자 부담을 줄이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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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평소에는 잘 모르지만 병원 갈 때는 건강보험의 존재를 알게 된다. 건강보험이 병원비를 다 보장해 주지 않기 때문에 절반가량은 내야 한다. 민간보험에 들었다면 부담은 줄어든다. 환자에게는 건강보험도 중요하고 민간보험도 무시할 수 없다. 1차 의료 안전망은 건강보험이고, 민간보험은 보완적인 역할을 한다. 암보험의 경우처럼 민간보험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이는 정부가 운영하는 공(公)보험인 건강보험과 구별해 사(私)보험으로 불린다.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은 시행한 지 30년밖에 안 돼 아직 허술하다. 전체 진료비의 60% 정도만 보장해 준다.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선진국은 80%를 웃돈다. 이런 허술한 공간을 메워주는 게 바로 사보험이다.

건강보험 보장률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1%포인트를 올리는데도 수천억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최근 2~3년 사이에 건보재정에 여유가 생기면서 수조원을 들였지만 5%포인트밖에 올라가지 않았다. 돈을 한꺼번에 많이 푸는 바람에 다시 적자로 돌아설 형편이다. 이런 상황이고 보면 사보험이 앞으로도 보완적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건보 보장률을 계속 올려나가야 하지만 어차피 공보험이 100%를 커버할 수 없는 만큼 사보험과 역할을 나눠야 한다.

최근 사보험을 둘러싸고 시끄럽다. 사보험은 두 종류가 있다. 암보험처럼 특정 질환에 걸리면 일정액을 보장하는 정액형과 실제 들어간 돈만큼 보장하는 실손(實損)형이 그것이다. 병원비는 비보험 진료비와 법정 본인부담금으로 구성된다. 보험 적용이 안 되는 초음파 진료비 같은 것이 대표적인 비보험 진료비다. 입원비의 20%를 환자가 내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는데 이런 것들이 법정부담금이다.

정부가 실손형 상품에 대해 법정 본인부담금을 보장하지 말고 비보험 진료비만 취급하도록 하면서 논쟁이 시작됐다. 정부는 환자가 사보험 덕분에 진료비를 한 푼도 안 내게 되면 병원 이용이 늘어나고, 결국 건보재정이 나빠질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실제로 올해부터 완전 면제된 영유아 입원비의 경우 진료비가 15%나 늘어났다는 것이다. 복지부는 100%를 보장해 주는 보험상품이 생기면 연 2400억~1조7000억원이 더 들 것이라고 추정한다.

하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고약하기 짝이 없다. '진료비 100% 보장'은 매력적인 보험 상품이다. 그러나 정부 규제대로 한다면 본인이 20% 이상을 내야 한다. 가벼운 병이면 몰라도 큰 병인 경우 20%도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6개월치의 법정 본인부담금을 300만원으로 제한한다곤 하지만 서민에게는 이도 만만치 않다.

비보험 진료비만 보장해줄 경우 환자와 의료기관이 법정부담금이 없는 비보험 진료를 선호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 비보험 의료시장만 커질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정부가 손해보험사들은 1999년, 생보사들은 지난해 8월 100% 보장용 실손형 상품을 팔게 해놓고 이제 와서 제동을 거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다. 손보사들은 이미 1200만 명에게 준(準) 실손상품을 팔았고 앞으로 계약을 갱신하면서 상품설계를 바꿔야 하는데 쉬운 일이 아니다.

실손상품 때문에 건보재정 지출이 늘면 소비자 부담으로 돌아간다. 반면 이 상품의 소비자 편익도 분명하다. 재정도 중요하지만 소비자의 선택권도 무시할 수 없다. 정부와 업계가 머리를 맞대 추가 부담과 편익을 따져야 한다.

건보재정이 걱정된다면 법정 본인부담금을 절반까지만 보장하도록 제한하거나 소액의 법정부담금은 보장하지 못하도록 한도를 정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참에 복잡한 보험상품을 표준화하고 과장 광고를 줄이는 방안을 마련해 소비자의 권익을 향상시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신성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