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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할 타자의 전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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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국 프로야구에서 4할 타율을 기록한 선수는 백인천이다. 그는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MBC 청룡에서 뛰면서 4할1푼2리를 쳤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뛰다 돌아온 그는 이제 막 프로 선수로 걸음마를 떼던 국내 투수들을 두들겼다. 미국 프로야구에서 20세기에 4할 타율을 기록한 선수는 13명이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테드 윌리엄스는 41년 4할6리를 기록, '20세기 최후의 4할 타자'로 남아 있다.

윌리엄스는 인생과 야구 양면에서 평범하지 않았던 사나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자원 입대했고, 한국전쟁에도 참전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메이저리그에 복귀한 그는 52년 4월 30일 해병대 복귀 명령을 받자 마지막 타석에서 홈런을 치고 전투기 조종사로 한국 전선에 뛰어든다. 그는 39차례 출격 기록을 남겼다.

53년 2월 16일, 평양 폭격 작전에 참가한 윌리엄스는 북한군의 대공포에 맞는다. 그러나 용케 추락을 면하고 수원의 기지까지 날아가 동체 착륙했다. 조종간을 놓고 태연한 표정으로 식당으로 향했다는 그는 똑같은 표정으로 메이저리그에 복귀했다. 복귀전은 53년 8월 6일, 세인트루이스와의 경기였다. 시즌 막판 37경기에 출전, 4할7리를 기록한 이해 그의 나이는 35세였다.

41년에 기록한 윌리엄스의 4할 타율에는 '전설'이 아닌 '진실'이 깃들여 있다. 그해 9월 29일, 시즌 마지막 경기인 필라델피아 애슬래틱스와의 원정 더블헤더(하루 두 경기를 하는 일)를 앞두고 보스턴의 조 크로닌 감독은 윌리엄스에게 출전하지 말 것을 종용했다. 4할(448타수 179안타)을 기록 중이던 윌리엄스의 타율을 지켜 주고 싶어서였다.

윌리엄스는 크로닌 감독의 권유를 사양하고 두 경기에 모두 출전, 8타수 6안타를 쳐 타율 4할6리로 시즌을 마감했다. 당시는 희생플라이도 타수에 포함하던 시절이었다. 지금의 방식으로 계산하면 윌리엄스의 타율은 4할1푼2리가 된다. 윌리엄스 이후 65년 동안 4할 타자는 나오지 않았다. 올 시즌 메이저리그 최고 타율은 아메리칸리그의 조 마우어(미네소타)가 기록한 3할4푼7리다.

윌리엄스는 전형적인 미국 영웅이다. 전쟁에 참전해 죽을 고비를 넘겼고, 전성기의 다섯 시즌을 전쟁에 바치고도 통산 타율 3할4푼4리, 홈런 521개를 쳤다. 그의 생애를 돌아보며 미국인들은 열두 가지 과업을 성취한 그리스 신화의 영웅 헤라클레스를 연상할 것이다. 헤라클레스는 죽은 다음 올림푸스의 신이 되었다. 미국인들은 윌리엄스를 야구의 올림푸스인 명예의 전당에 헌액했다.

윌리엄스에 대한 이야기를 스포츠면에 쓰면 진부하다는 핀잔을 듣게 된다. 스포츠면의 젊은 독자들은 윌리엄스 스토리쯤은 훤히 꿰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윌리엄스가 이룩한 업적과 진정한 스포츠맨십의 의미를 안다. 이런 독자들에게 케케묵은 전설을 들이대는 것은 실례다. 그러므로 테드 윌리엄스 스토리는 사실을 넘어서는 느낌으로 써야 할 것 같다.

하지만 경기장 너머에서 열리는 경기 관련 소식들은 더 희한하다. 빈볼을 던지고 퇴장당한 투수가 핀치 히터로 등장하는가 하면, 친구를 심판으로 추천하는 감독도 있다. 한 코치는 경기 종반 판세가 불리하니까 편을 새로 먹자고 팔을 걷는다. 이 졸렬한 현실의 정치를 지켜보는 관중이라면 65년 전 윌리엄스가 출전한 마지막 두 경기에 마음을 빼앗길 수도 있겠다.

허진석 문화스포츠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