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을 방문 중인 탕자쉬안 국무위원(앞줄 왼쪽)이 지난달 19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대북 설득에 나선 중국 후진타오 주석의 심기를 더 이상 거스르기 어렵다는 생각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 위원장은 지난달 19일 후 주석의 특사로 방북한 탕자쉬안 국무위원을 만나 '6자회담 복귀'의향을 내비쳤다. 북한에 유류와 식량.생필품을 제공해온 중국마저 등을 돌릴 경우 북한은 치명적 고립상태에 빠지게 된다. 특히 중국이 중재자 역할을 자임해온 6자회담 테이블을 박차고 나간 데 이어 핵실험까지 치달아 베이징 지도부의 스타일을 구겨버린 데 따른 부담감을 느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북한이 핵실험 사태를 계기로 보다 적극적인 전략에서 6자회담 복귀를 선택한 것이란 풀이도 있다. 핵보유국으로서의 지위를 인정해 달라는 주장을 펼칠 가능성이다. 통일연구원 정영태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은 미국 주도의 6자회담을 자신들이 이끌어가는 회담으로 만들려 할 것"이라며 "한반도 비핵화와 군축을 위한 협의를 하자는 주장을 들고나올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북한 핵실험으로 대북정책 비판에 직면한 공화당이 일주일 앞으로 닥친 중간선거를 의식해 북한에 모종의 '당근'을 제시하고 회담장에 이끌어냈다는 관측도 있다.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는 베이징까지 달려가 북한 측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을 만나는 성의를 보였다. 일각에서는 '일심회' 간첩사건이 불거지자 북한이 물타기를 위해 서둘러 6자회담 복귀 합의를 해줬다는 분석도 조심스레 제기한다.
북.미 양측은 몇 시간의 만남에서 회담 재개에 합의할 정도로 서로의 입장을 잘 파악하고 있다. 그렇지만 넘어야 할 산은 높다.
북한이 핵보유국 행세를 하면 회담판은 다시 헝클어질 수 있다. 정부 당국자는 31일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관련국들의 공통된 입장"이라며 선을 그었다.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한다고 해도 핵실험에 따른 미국과 유엔의 대북 제재가 당장 그치기는 쉽지 않다. 또 미국이 대북 금융 제재의 고삐를 북한이 만족할 수준으로 늦춰줄지도 불투명하다.
핵실험을 둘러싼 북.미 양측의 앙금은 가라앉지 않은 상태라 언제든 판이 깨질 불씨가 남아있는 것도 불안한 대목이다. 핵과 미사일로 강경하게 밀어붙이던 김 위원장이 선뜻 미국과 손을 잡은 데 대해 군부 강경파의 반발 등 뒤탈이 생길 수도 있다. 이런 복잡한 사정 때문에 북한의 6자회담 복귀가 사태 해결의 출구가 아니라 북핵 폐기를 향한 길고 고단한 여정의 시작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영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