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감한 투자가 대학 확 바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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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성균관대 공과대 반도체시스템공학부 1학년 지윤환(21)씨는 졸업 때까지 등록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다. 오히려 학교에서 매달 66만원씩 학비를 받는다. 졸업 뒤엔 삼성전자에 취업한다. 입학 당시 수능 성적이 자연계 전체 학생 중 1% 안에 들어 학교로부터 파격적인 대우를 받는 것이다. 지씨는 "서울대 생명과학부에도 합격했지만 성대를 선택했다"며 "타 대학에 비해 교육 여건이 좋아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10년 전만 해도 성대 신입생 가운데 수능 성적이 상위 1% 이내인 학생은 극소수였다. 장학금 받기도 힘들었고, 졸업 후 취업도 불투명했다.

1996년 총장이었던 정범진(73) 전 교수는 "그때는 학교에 희망이 없었다. 2류는 고사하고 3~4류로 떨어질지 모른다는 위기감까지 있었다"고 말했다. 성대는 91년까지 재단을 맡았던 봉명그룹이 사실상 손을 떼면서 극심한 재정난에 시달렸다.

성대는 재정난을 극복하기 위해 96년 11월 삼성그룹의 인수 제의를 받아들였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현재 성대의 모습은 달라졌다. 기업의 과감한 투자가 대학을 변화시킨 사례다.

◆ 캠퍼스부터 달라져=이 대학 안희목(경영학과4) 총학생회장은 "재단이 대학에 지원하는 돈이 해마다 100억원씩 늘어 내년엔 980억원에 달한다"며 "국내 어디에도 이런 대학은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성대의 재단 전입금 규모는 국내 최대다.

투자는 대학의 외모부터 바꿔놓았다. 서울캠퍼스는 건물 세 채를 제외하고는 모두 새 건물이다. 미국에서 기업을 운영하는 서병인(71.55학번 화학과)씨는 최근 학교를 방문해 "메케한 최루탄 냄새에다 낡고 오래된 학교 이미지가 10년 만에 완전히 바뀌었다"며 100만 달러를 모교에 기부했다.

◆ 개혁의 출발은 투자=성대의 변화 전략은 ▶인재 유치▶구조조정▶수요자 교육▶경영 효율로 요약된다. 막대한 재단 지원을 바탕으로 신입생의 10%(326명)를 수능 1% 안에 드는 학생으로 채웠다. 국내외 대학을 가리지 않고 연구실적이 좋은 교수들을 스카우트했다. 올해 교수 임용 수는 1118명이다. 여기에다 성과가 좋은 교수에게는 파격적 인센티브를 준다. 연구 과제가 좋다고 판단되면 한 해 5000만원까지 지원한다. 그 결과 과학논문인용색인(SCI)에 등재된 우수 논문 수가 96년 92편에서 지난해 말 1568편으로 늘었다. 교수 한 명당 외부 연구비도 2배 늘었다. 올해 4월 발표된 두뇌한국(BK) 21 사업에서도 대형 사업단 20곳 모두가 선정됐다.

◆ 선택과 집중 전략=96년 76개 모집단위가 현재 8개 모집단위로 대폭 축소됐다. 학생들의 전공 선택 범위를 넓혀주는 대신 불필요한 학과는 통폐합했다. 또 2010년까지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릴 4대 역점 분야(나노 반도체, 성균관대-미국 MIT 경영전문대학원, 동아시아 연구소, 교양교육을 위한 학부 대학 육성)를 선정, 집중 투자하고 있다.

고인수 법인 상임이사는 "대학 구성원의 지지를 받아 발전 전략을 세우고, 재단은 발전 가능성이 있는 분야에 집중 투자하는 등 선택과 집중이 성대 성공 모델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강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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