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치일을 기억하십니까”/김진 사회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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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아 이날 반만년의 신성한 역사가 아 이날 이천만의 귀중한 생명들이 암흑천지에 뒤덮여 천고의 더러움을 남기었는가­.』
29일은 국치일­. 꼭 80년전인 1910년 8월29일자 「독립신문」2면에 실린 「해일」이란 필명의 통분의 시다.
일인의 사주를 받은 총리대신 이완용등이 순종을 위협,한일합방의 부끄러운 역사가 시작됐던 날이다.
해일의 시는 경복궁에 걸렸던 일장기사진과 함께 충남 천원 독립기념관에 전시되어 그날의 통곡을 지금까지 전해주고 있다.
그러나 그 비분강개의 소리는 오늘날 안타깝게도 사회전체에 울려퍼지지 못하고 기념관의 작은 공간속에 갇혀 있는 것만 같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그 부끄러운 역사를 상기해 보자는 움직임이 없다.
국치일은 정부가 정한 32개 각종 기념일에 빠져있고 정부차원의 행사는 하나도 없다.
여당도 야당도 즐겨쓰는 성명한줄 내지 않았다.
반제를 주요명분으로 하는 전민련과 전대협도 『이날에 대한 아무런 논의도,계획도 없다』는 공통된 답변이었다.
심지어 독립운동 관련단체의 한 간부는 행사여부를 묻는 질문에 『그날이 국치일이냐』고 되물었다.
사실 이름 그대로 망신의 역사인 까닭에 유별나게 기념할 필요가 있느냐는 주장도 있을 법 하다.
그러나 가해자인 일본은 8ㆍ15를 패전이 아닌 종전기념일로 정해 생생히 되새기고 있고 독일도 유대인 학살의 추악한 역사를 기념하고 있다는 것을 새겨볼 필요가 있다.
조선총독부청사였던 중앙청을 우리가 허물지 않고 보존하는 것처럼 국치일을 기억하고 기념해야 하는 것은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으려함이 아닐까.
며칠전 한 독자의 편지는 이렇게 적고 있다.
『60년대까지는 그래도 이날이 달력에 표기가 되어 있었죠. 그러나 한일관계 정상화와 근대화를 겪으면서 거의 사라져 버렸어요.』
자신들의 부끄러움은 될 수 있는대로 감추고 빨리 잊으려는 것이 인간의 속성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부끄러운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곰곰 괴로움과 아픔을 되씹어 보는 「용기」도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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