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산의톡톡히어로] 앨저넌에게 꽃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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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내 이름은 찰리 고든 도너빵가게에서 일하고 잇는데 도너 씨는 1주일에 11달라를 주고 먹고 십퍼하면 빵하고 케이크도 준다. 나는 32살이고 다음 달이 생일이다"

대니얼 키스의 SF소설 '앨저넌에게 꽃을'(동서문화사, 김인영 옮김)의 주인공 찰리 고든은 이렇게 자신을 소개한다. 그는 맞춤법도 모르는 백치다. 바보 찰리는 똑똑한 박사님에게 머리가 좋아지는 수술을 받는다. 그리고 정말로 머리가 좋아진다. 그것도 지나치게! 무지의 어둠에서 지식의 빛 속으로 걸어 나온 찰리는 행복했을까?

이 이야기 속에는 두 명의 찰리가 있다. 바보 찰리와 천재 찰리. 바보 찰리는 사랑스럽고, 천진하며, 주변 사람들 모두가 자신을 아껴준다고 믿는다. 일이 잘못되었다면 모두 자기 탓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그는 똑똑해지고 싶다. 평범한 사람이 지식을 원하는 것보다도 더 간절하게. 그것만이 사람들을 기쁘게 해줄 수 있는 길이라고 믿었으니까.

하지만 머리가 좋아진 천재 찰리는 지금껏 보아왔던 세계와 사람들이 자기 생각과는 '다른' 존재들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바보 찰리에게 쏟아졌던 친절은 호의가 아니라 조롱이었고,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박사는 이기적이고 편협한 지식인에 불과했다는 것을.

만인을 우러러보던 바보 찰리가 만인을 눈 아래로 보는 천재가 되었을 때, 그를 사로잡은 것은 냉소와 고독이었다. 어떤 사람은 찰리의 비극이 감히 신의 영역을 침범하려고 한 인간에게 떨어진 천벌이라고 한다. 옳다. 찰리의 이야기는 태양을 향해 날아오르려던 이카루스의 추락을 연상시킨다. 또 어떤 사람은 말한다. 도덕성과 함께 성장하지 못한 지식은 인간을 오만하게 만들고 사회로부터 격리시킬 뿐이라고. 그 말도 옳다. 찰리의 지식은 타인들과 함께 얻은 열매가 아니다.

그러나 바보 찰리와 천재 찰리의 가장 큰 비극은 이것이다. 천재 찰리와 바보 찰리가 서로를 끌어안지 못했다는 것. 타인을 끌어안는 법을 알려면, 자기 자신부터 끌어안을 수 있어야 하는데. 두 찰리는 언제나 서로를 '타인'처럼 생각했다. 그건 바로 자기 자신이었는데 말이다. 찰리가 아닌 우리들도 항상 저지르는 실수가 아닐까? 자기 안의 바보스러움, 자기 안의 오만함을 끌어안지 못하는 것. 그로 인해 타인 또한 끌어안지 못하는 것.

가만히 지켜보고 있기만 해도 눈물이 날만큼 슬픈 사람이 있다. 바로 찰리가 그런 사람이다. 그의 비극이 비록 드라마틱하기는 하지만, 우리들 또한 일상적으로 체험하는 작은 비극의 연장이기 때문에.

진산<무협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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