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 집단행동 용납안된다/건설부 소동,기강확립 계기삼아야(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20일 건설부에서 발생한 하위직 공무원들의 장관 조회 집단 보이콧 행위는 공무원 사회의 기강이 더이상 용납할 수 없을 정도로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준 충격적 사건이었다.
구구이 얘기할 필요도 없이 국가조직의 근본은 상명하복을 원리로 하는 위계질서 확립에 있다. 이 질서가 무너질 때 그 조직은 이미 통치기구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게 되며 그것은 바로 사회적 혼란과 무질서,국민생활의 불안으로 이어지게 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겉으로 드러난 이번 사건의 전말은 물론 장관이 훈시를 하게 되어 있는 아침 조회에 하위직 공무원 기백명이 일제히 퇴장했다는,어떻게 보면 지극히 단순한 사건이다.
그러나 이같은 공무원들의 집단행동이 갖는 의미와 그 파장을 생각해 볼 때 이번 일은 결코 간단히 흘려 버릴 수 없는 심각한 위험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가장 주목해야할 것은 이번 사건이 공무원 사회에 있어서는 안될 할거주의와 집단 이기주의를 바탕에 깐 집단 항명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보도된 바에 따르면 집단퇴장의 동기는 건설부가 자체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직제개편 계획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되었다 한다.
이날의 장관조회도 바로 이 문제에 대한 설명을 하고 이해를 얻기 위한 목적으로 마련되었다 한다.
그리고 직제개편의 내용은 정책부처로서의 건설부의 위상을 재정립하고 오랫동안의 방만한 조직관리로 불필요하게 비대해진 건설부의 기능과 구성을 관련부처나 지방자치단체로 대폭 이관하는 것으로 돼 있는 모양이다.
이번 직제개편은 또 앞으로 실시하게 될 지방자치제에 대한 준비작업의 성격도 띠고 있었던 것으로 들린다.
우리가 보기에 이같은 취지와 방향의 직제개편은 건설부에 그칠 것이 아니라 범정부 차원에서 과감히 추진돼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내년도의 팽창예산과 관련해서도 거론된 바 있지만 지금 우리 정부가 안고 있는 큰 문제중의 하나가 지나치게 비대해진 조직과 공무원의 증원,그리고 거기서 오는 비효율성과 예산의 낭비다.
기업과 가계에 대해서는 기회있을 때마다 감량경영과 근검절약을 강조하면서도 정부 스스로는 한번도 경영합리화의 의재를 보인 적이 없다. 지난해 행정개혁위원회가 몇년 만의 연구검토 끝에 내놓은 정부조직개편안이 기구축소 부분은 철저히 묵살된 채 기구확대의 방편으로만 이용되었던 것은 그같은 사실을 말해준다.
이같은 여건에 비추어 볼 때 이번 건설부의 자체개편계획은 한걸음 앞선 것이며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했으리라 짐작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계획이 내부의 반발과 집단행동을 일으켰다는 것은 소속 부처의 일을 남에게 넘겨줄 수 없다는 공무원사회에 뿌리깊이 박힌 할거주의,그리고 직제개편으로 공무원 개개인에게 돌아올지도 모를 불이익을 집단행동으로 막아보겠다는 이른바 집단 이기주의의 표출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그러지 않아도 공무원들의 무사안일과 편의주의적인 근무자세,공무원 사회의 기강해이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오랜 병폐의 하나로 지적돼 왔다.
이 사회에 만연되고 있는 비리와 부정,각종 범죄의 확산과 민생치안 부재,부동산투기와 조세형평에 대한 불만등 거의 모든 병리적 현상이 일부 이권부서 공무원의 개입이나 묵인 혹은 직무의 유기아래 이루어져 왔음을 구태여 구체적 사례를 지적하지 않더라도 온 국민이 일상적으로 겪고 부닥치는 일들이다.
이제 공무원들이 개인의 이익을 위해 집단행동도 불사하게 되었다면 이들은 국민의 공업으로서의 자세문제는 고사하고 앞으로 이 정부가 과연 조직적인 통제기구로서 제 기능을 다할 수 있을지조차 의심스럽다 아니할 수 없다.
우리는 물론 모든 공무원들을 싸잡아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더 많은 공무원들이 박봉에 쪼들리면서도 공무원으로서의 임무와 사명을 위해 때로는 생명까지 바칠 각오가 돼 있음을 모르지 않는다.
또 이번 사건으로 표면화된 기강해이가 개개 공무원들의 잘못만이라고 보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 저변에는 민주화란 이름아래 이 사회에 번지고 있는 집단 이기주의가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리는데 그치고,새로운 모럴과 가치관의 정립에 실패하고 있는 이 사회 지도층의 무능,확고한 이념이나 비전도 없이 국가를 경영하겠다고 나선 정치지도자들과 정부고위층의 지도력 상실,여기서 파생된 조령모개식의 행정관행과 이에따른 공무원들의 위신추락과 자기비하등 여러 가지 복합된 요인들이 깔려있다고 본다.
이번 사건의 배경에도 윗사람들 일 추진방법에 문제가 있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정치ㆍ경제ㆍ사회 모든 부문에서 일찍이 겪지 못했던 어려운 국면을 맞고 있다. 민주적 제도와 질서를 확립하고 가라앉는 경제를 일으켜 세워야 하며 국민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사회분위기를 조성해 나가야 한다.
그 모든 일에 앞장서야 할 사람은 정부와 공무원들이다. 공무원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자기 일에 철저히 자세를 보일 때에만 이 모든 일들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고 국민의 동의와 협조도 얻을 수 있다.
이번 사건은 이같은 기대에 찬 물을 끼얹었다는 점에서도 국민 모두의 공분을 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따라서 정부도 기강확립의 차원에서 이번 사건을 철저히 다루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그쳐서는 안되고 이를 계기로 공무원사회의 기강을 바로잡고 정부의 위상을 바로 세우는 일에 나서야 할 것임은 물론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