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래어 남용 해도 너무한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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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아무리 러시아워라 해도 마이 카를 가진 오너 드라이버 여러분 너무 스피드를 내지 마십시오.』
좀 과장된 표현이긴 하지만 이런 말에 저항감을 느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 사회에서 외래어가 너무 많이 쓰이고 있다는 지적은 오래 전부터 귀 따갑게 들어왔지만 최근 방송위원회 언어심의소위에서 밝힌 방송의 외래어ㆍ외국어 남용 사례는 우리를 놀라게 한다.
그 심각성은 어느 방송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내용중에 『좀더 아카데믹한 퀘스천을 던질 수 없나』란 질문에 『하이 소사이어티한 무드 속에서 이야기하고 싶다』고 답했다는 지적에서 단적으로 엿볼 수 있다.
이는 숱하게 지적된 내용중의 단 한가지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출연자들이 분별없이 사용하는 외래어 말고도 방송편성물의 제목 자체부터도 「가스펠아워」,「가족 토크쇼」 등 우리를 어지럽게 한다.
외래어의 남용은 물론 방송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신문을 포함한 각종 간행물,길거리의 여러 간판등 우리 생활주변에도 널리 퍼져 있다.
최근 어느 방송의 보도에 따르면 과자류의 상표만 해도 60%이상이 외국식 이름으로 붙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러한 사례는 길거리에 나가거나 백화점,각종 매체의 광고속에서 우리는 일상적으로 접하고 있다. 일상적으로 접하다 보니 아예 둔감해져버린 상황이다.
언어란 그 시대의 사회의식을 반영하고 이를 사용하는 사람의 의식과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언어를 통해 우리는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 이웃을 알게 되며 사회적 활동을 하게 된다.
특히 청소년의 경우 이를통해 사회를 경험하고 적응하고 자라게 된다. 이러한 언어의 기능을 생각한다면 앞으로 우리 사회의 앞날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외래어 선호현상은 남의 것은 좋아보이고 내 것은 보잘 것 없게 보는 사대적 사고방식을 무의식중에 내보이는 것이다. 이는 또한 무가치한 열등의식에 사로잡힌 패배주의적 의식의 소산이기도 하다.
그러한 패배의식은 자기 중심을 잡지 못한 데서 오는 정신적 빈곤과 연결되고 결국은 허용으로 감추려들게 만든다.
그러한 내적 빈곤을 채우기 위한 허영심이 결국은 이러한 외래어의 남용,물질적 사치로 나타나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
지금 우리의 사회 일각에서는 민족의 주체성을 찾기 위한 다방면에 걸친 노력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를 실현하는 구체적 방법은 단순히 논의되고 있는 전통적인 문화의 복원등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선 바른 언어생활을 잡아가는 데서부터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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