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한국 패션 1세대 디자이너 노라 노 패션쇼 50주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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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이날 한국 최초의 패션쇼를 진행했던 디자이너 이름은 '노라 노'.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며 궁핍했던 당시 한국에 패션이라는 개념을 알린, 말 그대로 한국의 1세대 디자이너다. 29일은 노라 노 선생의 첫 패션쇼가 열린 지 50주년이 되는 날. '한국 패션의 어머니'로 불리는 노라 노(79)선생을 청담동 본사에서 만났다. (노라 노 선생의 본명은 노명자. '노라'는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에 나오는 주인공 이름에서 따왔다.)

# 패션의 불모지 한국을 깨워라

"어렵고 힘들었지. 모델은 달랑 6명이었어. 두어 명을 제외하고는 단골 손님 중에 섭외한 거야. 훈련은 3개월 동안 했어." 노라 노 선생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전쟁이 끝나고 유럽에서 연수 기회가 있었어. 이탈리아에 갔는데 패션 덕분에 이탈리아의 섬유산업이 경제에 엄청나게 공헌하고 있다는 거야. 그래서 나도 결심했지. 내가 노력해 패션산업이 우리나라 경제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돼야겠다고 말이야." 책임감에서 시작한 선생의 구상 때문이었을까. 선생은 당시 패션쇼에서 100% 국산 원단을 사용했다. 수입 원단의 명성이 하늘을 찌르는 현재에 비춰봐도 이례적 결정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쉽지 않았다. 겨우 전쟁의 그늘을 벗어나고 있던 때 100% 국산 원단이라니. 선생이 국산 원단을 찾는다는 소식에 당시 상공부 장관이 직접 나서 원단업체를 소개해줬다. "당시엔 모두가 무에서 유를 창조해 보자는 열정이 있었어. 하나가 돼 해보자는 거였지."

# 미국의 노라 노, 실험정신으로 성공하다

71년부터 노 선생은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프레타 포르테 전시회에 참여하게 된다. 코트라(대한무역진흥공사)의 권유로 시작된 일이다. 국산 실크를 원사로 수출하는 것보다 의상으로 고급화시켜 외화를 벌고자 했다.

그때 파리에서 낭보가 날아들었다. 노 선생의 옷을 보고 미국 뉴욕의 삭스 백화점 바이어가 350여 벌의 의상, 돈으로 2만 달러어치의 물량을 주문한 것. "염색이 문제였어. 염색을 하면 옷감을 흐르는 물에 빨아야 하는데 도대체 그 물량을 소화할 곳이 없는 거야. 그래서 어찌했던 줄 알아. 우선 한강에 나가 배를 빌렸어. 그 배 꽁무니에다 염색한 옷감을 매달고 그냥 내달렸지 뭐. 정말 별짓 다했지."

우아한 실크 의상으로 주목을 받은 그는 78년 미국법인을 설립하고 뉴욕에 진출했다. 80년대 노라 노의 전성기가 시작된 것이다. 칸딘스키.미로 등 세계적 미술가의 작품을 실크에 프린팅하는 기법을 이용한 그의 의상은 카피 제품이 난무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당시 뉴욕에서도 생소했던 패션과 미술의 만남이었기 때문이다. 85년엔 세계적 패션지 '보그', 87년엔 '하퍼스 바자'에 광고도 실었다.

"눈치를 봐야 하는 한국에서와 달리 뉴욕에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했지. 서양인은 전체적 모양을 잘 만들었지만 아무래도 한국인의 섬세함은 새로웠던 거야. 한국 사람은 디테일과 선을 표현하는 섬세함이 아주 강한 편이잖아."

그러나 92년 미국 사업을 정리하기까지 패션 브랜드 '노라 노'의 활약상은 한국에선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굳이 홍보를 하려 하지도 않았다. 뉴욕 7번가. 삭스 백화점 등 패션과 관련된 뉴욕의 이미지가 한국에선 아직 낯선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 후배들이여 욕심보다는 도전 정신을 가져라

"패션계는 한 방이야. 어제는 잘 팔려도 오늘은 망할 수 있어. 그만큼 까다로운 시장이지." 여든을 바라보는 노 선생은 후배 디자이너들에게 시장의 변화를 제대로 읽을 줄 아는 소양을 강조했다. "자기 주장만 고집하다 보면 시대에 뒤떨어지게 마련이야. 언제라도 트렌드에 올라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해."

노 선생은 또 후배들에게 야망과 욕심보다 도전정신을 주문했다. "본인의 능력과 체력의 한계를 알아야 해. 디자이너의 일이란 엄청난 체력을 필요로 하지. 과욕은 자멸을 부르게 마련이야."

패션쇼를 한 지 50년, 내후년이면 패션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떠난 지 만 60년이 된다. 노 선생이 보는 지금의 패션은 어떨까. "의상은 어디까지나 사람이 주체가 되어야 해. 예술적 터치가 필요하지만 결코 순수한 예술일 수는 없는 거야. 옷은 입어서 반듯해야 하고 5년을 입어도 언제나 새로워 보여야 성공한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어. 좋은 옷을 오래 입는 것이 진정한 사치랄까."

'패션계의 대모'인 그의 꿈은 무엇일까 " 내 꿈? 2년 후면 내가 패션을 시작한 지 만 60년이 되지. 그때 후배 디자이너들을 모델로 기념 패션쇼를 여는 게 꿈이야. 하하."

조도연 기자<lumiere@joong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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