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정부 "북한 납치 집중 보도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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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일본 정부는 공영방송 NHK에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문제를 집중 보도할 것을 지시하기로 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무상은 24일 기자회견을 열고 "NHK의 단파라디오 국제방송에서 납치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도록 명령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에 있는 납치 피해자들이 구출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며 "결코 (납치 피해자들을) 내버리지 않을 것이란 점을 알리는 게 납치 피해자들의 최대 희망인 만큼 할 수 있는 것은 뭐든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표현과 보도의 자유는 절대로 지켜야 하며 (방송의) 내용까지 관여할 생각은 결코 없다"고 밝혔다.

일 방송법에 따르면 일 정부는 NHK 단파라디오 국제방송에 국고 지원을 하는 대신 방송 사항에 대한 명령권을 갖는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시사 ▶정부의 중요한 정책 ▶국제 문제에 관한 정부 견해 등 세부적 내용이 아닌 세 개의 큰 틀만 제시하고 구체적 보도 내용은 NHK 자율에 맡겨 왔다. 이번처럼 일본 정부가 정부의 개별 정책에 대한 방송을 명령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일 정부의 '방송 명령'은 '특정 실종자 문제조사회'라는 단체가 운영하는 단파라디오방송 '시오가제(갯바람)'가 북한의 방해 전파로 방송이 어렵게 되자 지원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언론계와 학계 등에선 "이는 정부의 언론 장악 시도일 뿐 아니라 현 정권의 '북한 때리기'에 언론이 악용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아사히(朝日) 신문은 "정부가 국고를 지원하기 때문에 명령 권한이 있다고 하면 NHK는 국고 지원을 반납하고 명령방송의 규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집권 자민당의 가타야마 도라노스케(片山虎之助) 전 총무상도 "납치 문제를 해외에 정확히 전달할 필요는 있지만 정부 명령으로 이뤄지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강조했다.

핫토리 다카아키(服部孝章) 릿쿄(立敎)대 교수는 "단파라디오 국제방송은 이미 자율적인 방송과 정부 홍보가 하나가 돼 있는 상황에서 굳이 명령을 내리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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