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경의조기유학돋보기] 조기유학 함께 간 엄마의 일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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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아이들 도시락 챙겨서 학교에 데려다 주고, 내 학교에 가서 오전 내내 수업하고 집에 오면 오후 1시쯤 된다. 점심식사 후 잠시 쉬거나 필요한 것을 사기 위해 한국 마트나 미국 수퍼마켓에 갔다 오면 아이들이 파하는 오후 3시20분이 된다. 아이들 데려와서 간식 주고 숙제 좀 시키다 보면 과외 선생님이 오거나 아이들 운동 경기 하는 시간, 또는 친구네 집에서 놀기로 약속한 시간이 되어 데려다 주러 나간다. 부리나케 한 아이 데려다 주고 오면 다른 아이는 또 다른 곳에 데려다 주어야 한다. 그러고 나서 다시 두 아이 각기 데리러 나갔다 오면 저녁 식사 시간이 된다. 저녁 해먹을 시간이 없을 때에는 피자를 시켜 먹거나 냉동식품을 꺼내 데워 먹는다. 그리고 설거지, 빨래, 청소…. 밤 11시 이전에는 2층 내 방으로 올라가본 적이 거의 없었고, 내 공부는 새벽에 일어나 해야만 했다.

미국에는 몇 개의 대도시를 빼고는 대중교통 수단이 별로 없는 데다, 길거리를 마음 놓고 걸어다닐 수도 없기 때문에 가족 중 누군가가 어디를 간다고 하면 반드시 어른이 차로 데려다 주고 데려와야 한다. 또 보호자 없이 13세 이하의 어린이를 집에 혼자 두었다가 경찰에 적발되는 날에는 아이는 빼앗기고 부모는 감옥에 갈 수도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학교에서 나와 같은 처지의 한국 엄마들을 만나면 서로 하소연하고 위로 해주기 바빴다.

사실 처음 미국에 갈 때만 해도 주말이면 아이들이랑 공원에 가서 바비큐도 해먹고 여행도 많이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었다. 하지만 숙제와 시험에 지친 우리 세 식구는 주말이면 아무 것도 못하고 집에만 널브러져 있기 일쑤였다. 나의 미국생활은 24시간 긴장하고 종종거리며 뛰어다닌 바쁜 나날이었다.

김희경 '죽도 밥도 안 된 조기 유학' 저자.브레인컴퍼니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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