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최 전 대통령 국민장을 보는 착잡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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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국가는 최규하 전 대통령을 국민장으로 예우하기로 했다. 외교관.국무총리로 나라에 기여했고 무엇보다 국가원수를 지냈기 때문이다. 그의 국민장 결정을 보면서 우리는 일말의 착잡함을 감출 수 없다. 최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복합적이기 때문이다. 그는 외교관.총리로선 많은 공적을 남겼다. 총리 땐 주말에도 민생.건설현장을 챙겼다. 그리고 그는 검소하고 청렴했다.

그러나 '국가지도자 최규하'는 다르다. 1979년 10.26 후 나라가 민주화의 기로에 섰을 때 그에게는 신속히 민주헌법을 만들어 정부를 이양하라는 역사적 사명이 주어졌다. 한국은 이미 60년 4.19 때 허정 과도정부 수반이 4개월 만에 정부 이양을 마친 경험이 있었다.

최 대통령은 이 사명에 몸을 던지지 못했다. 민주화 세력은 계엄령 해제를 외치는데도 그는 미적거렸고 급기야 5.18 민주항쟁과 유혈 진압의 비극이 터졌다. 최 대통령은 정부 이양 일정을 1년6개월 정도로 늘려 잡았고 신군부는 12.12 쿠데타를 거쳐 권력을 잡았다. 최 대통령은 왜 그리도 역사의 발목을 붙잡았는가. 이원집정제 개헌까지 검토했던 걸 보면 혹시 개인적인 야심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그가 처한 환경이 어려웠던 건 사실이다. 민주화 세력은 각종 요구에 성급했다. 12.12에 목숨을 걸었던 비밀결사 하나회의 신군부는 그런 그에게 너무 버거웠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처지를 이해만 할 수 있을까. 신군부의 출현으로 이 나라의 민주화는 다시 10여 년을 기다려야 했다. 그가 결연했더라면 역사의 물줄기는 달라졌을지 모른다. 러시아의 보리스 옐친은 탱크 위에 올라 쿠데타를 막아냈다. 국가의 리더란 바로 이런 것이다. 역사적 순간 역사에 부응한 결단을 내리지 못하면 나라를 후퇴시킨다.

국가원수를 지냈다는 것만으로 국민장의 요건은 충족되는 것일까. 지도자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엄정해야 한다. 그래야 살아 있는 지도자들이 역사의 무서움을 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