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야방북」 남북교류 새 전기/정부의 방북 선별허용 방침과 전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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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7ㆍ20」 구체화ㆍ통일 접근 일환/민족대교류 기간 예외적 대폭 허용/신청 줄이을 듯… 장기적 대응기준을
정부는 2일 8ㆍ15 판문점 범민족대회와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평양 통일염원미사는 사실상 허용하고 6일로 예정된 범민족대회 예비회의(평양)의 전민련 단독참석은 불허키로 함으로써 재야단체들의 방북문제에 일단 매듭을 지었다.
전민련과 북한이 공동주관하는 행사임에도 평양 3차 예비회담은 불허하고 8ㆍ15 판문점대회와 같은 기간의 평양행사는 허용하는 것이 일견 앞뒤가 안 맞는 결정같아 보이나 홍성철통일원장관은 『평양 예비회의는 기간이 우리의 민족대교류 기간이 아니고 각계각층 인사가 참여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판문점 행사는 우익단체까지 포함되면 허용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평양 통일염원미사 참석은 「각계각층」과 관계없이 교류기간내 행사여서 북한이 신변안전및 무사귀환만 보장한다면 방북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비록 6일 평양예비회담을 제외시키긴 했지만 정부가 뒤늦게라도 재야단체들의 대북교류를 원칙적으로 허용키로 방침을 정한 것은 크게 보아 진일보한 조치이며 7ㆍ20 민족대교류 선언의 의미를 구체화시키려는 노력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재야단체와 북한과의 공동주관행사는 모두 8월15일로 예정돼 있어 노대통령이 제안한 민족대교류 기간(8월13∼17일)내에 포함된다는 점에서 처음부터 어떤 조건을 달아 불허하기는 어려운 사안이었다. 그럼에도 허용여부를 놓고 정부 부처간에 이견을 빚고 갈팡질팡했던 것은 아직도 정부내에 반정부성향이 짙은 이들 재야단체를 보는 눈이 정리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당한 위험과 양보를 감수하고라도 통일문제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북한과 재야를 큰 보자기에 싸안고 가야 한다는 노태우대통령의 통치적 인식과 반정부세력과 북한의 짝자꿍은 일단 그 저의를 의심하고 파괴적 결과에 대비하는 것이 체질화된 통일원 관계자들간에 미처 시각조정이 안된 상태였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크게 보면 방북허용이라는 결론은 당초 7ㆍ20선언을 충실히 따른 것이며 8ㆍ15를 전후한 5일간 예외적으로 남북한 주민의 무제한 자유왕래를 허용하자는 남북제의를 전민련에만 예외로 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북한이 예상대로 민족대교류 제의를 거부했지만 노대통령의 7ㆍ20제의에는 북한동포에게 우리 사회를 일방적으로 개방하겠다는 약속이 있기 때문에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최대한 취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또 국민들은 7ㆍ20제의를 계기로 남북왕래가 대폭 개방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돼 어떤 형식이든 만나겠다는 것을 불허한다는 것이 정부에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만약 불허한다면 「민족대교류」 기간내의 교류마저도 정부가 저지했다는 비판을 받게될 것은 필지의 사실이며 대통령의 민족대교류 선언이 실제로는 이뤄지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선전적 제의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감수할 수밖에 없게 되어 있었다.
전면개방 제의자체를 애당초 북한이 받아들일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것이 북한사정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의 공통된 인식이었으므로 이런 장애를 과연 우리 정부가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처음부터 중요관심사였다.
그러나 정부는 전민련ㆍ신부들의 대북접촉을 허용한 이번 조치가 앞으로 재야단체들의 잇따른 방북신청에 어떻게 준용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있다. 어차피 현상황에서 북한과 직접적 교류를 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거의 재야단체에 한정될 가능성이 크고 보면 이번의 허용조치는 선례가 될 수밖에 없다.
북한이 방북을 허용하는 것은 자신들의 정치선전에 유리하거나 대남 통일전선 형성전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될 때에 국한될 것은 명약관화하다. 이런터에 이번에 전민련의 평양 3차 예비회담의 참가 불허명분이었던 「각계각층의 참가」라는 기준은 보편성의 측면에서 모순을 안고있다.
당장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경우 평양 미사 참가에 함께 가게 꼭 끼워달라는 우익신부 단체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각계각층 신부가 참가해야 한다』는 기준이 적용되기 어렵다.
이 문제에 관해 정부는 8ㆍ15 민족대교류 기간은 예외적인 기간이므로 가능한 한 대폭교류를 허용하고 그 기간이 지나면 다시 통상적인 절차에 의한 심의 승인을 받아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결정할 것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만약 민족대교류 기간이 지나 전농ㆍ전노협 등 재야단체가 북한과의 공동행사를 신청한다면 어떤 명분으로 불허할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각계각층 농민단체ㆍ노동자가 참여해야 한다고 요구하기는 곤란하고 기간하나로 불허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 어쩐지 궁색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재야단체들만 북한과 교류하며 정부비판적인 주장을 증폭시키는 것을 수수방관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이 있음에도 불구,가능한 분야에서라도 교류를 확대해나가는 것이 북한사회 개방과 민족동질성 회복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을 하면 앞으로 예상되는 부작용들이 꼭 치명적인 것이라고 볼 필요는 없을 듯하다. 다만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면 먼저 재야단체의 방북신청을 좀더 긍정적으로 보고 대비책을 세우는 정부내의 시각조정이 더 절실하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
정부가 사려깊고 중립적인 사고로 재야단체의 대북접촉를 긍정적으로 대응하는데도 불구,북한과 재야가 그같은 기회를 악용,민족분열과 편향된 목적을 추구한다면 점점 더 설 땅을 잃고 말것이기 때문이다.<조현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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