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라벌 <서울 논현동>|(한국전기통신공사부사장) 서정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하루도 평안한 날이 없던 초근목피의 굶주림 때문에 『밤새 안녕하셨습니까』아니면『진지 잡수셨습니까』라는 인사를 우리는 과거에 주고받았었다. 이제 보릿고개를 모르게 된 우리의 생활 문화에서 단골이란 음식 맛도 좋아야 하지만 양도 푸짐하고 외상도 잘 주는 바람에 자주 들르는 집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에겐 자주 못 가더라도 가족이나 친구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내켜 함께 찾는 음식점이 단골집이다.
보존해야할 문화로서 음식의 지방색은 퇴색하고 지역 감정만 거세지는 세상에서 그리고 탈 전통 문화의 도시 생활에서 각 고장의 음식 맛을 자랑할 만한 단골집의 수는 날이 갈수록 줄어든다.
솔직하게 말해서 나는 서울 토박이라 그리운 고향 음식의 향수를 모르고 산다. 그래서 내세울만한 토속적 단골집 하나 없어 원고 청탁을 받고 당혹할 뿐이다. 특징이 없다고 할까, 맵지도 짜지도 않은 서울 음식으로 잔뼈가 굵었고 외국에 한식점이 별로 없던 시절의 유학생활 때문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양식에도 제법 길이 들었다. 그리고 일에 쫓겨 이 나라 저 나라, 이 고을 저 고을 돌아다니며 음식이라면 이것저것 먹어야 되는 자칭 잡식성 문화인이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잡견이나 독사까지 씨를 말리는 미식가는 물론 아니다.
나는 원래 육류를 좋아하고 밥보다는 국수를 좋아해 굳이 단골집이라면 서울 강남 논현동 도산 공원 앞에서 칭기즈칸·샤브샤브·전골·냉면 등을 전문으로 하는「서라벌」((545)9933)을 들고 싶다. 갈 때마다 이 집은 늘 만원이고 가족이나 친구들끼리 모이는 보통 사람들이라 그런지 분위기가 시끄럽지도 엄숙하지도 않아 느긋해서 좋다. 무엇보다도 음식이 정갈하고 화장실도 위생적이며, 종업원 외 접대나 시중도 유별남이 없어 몇년을 다녀봐도 한결같아 자주 발길이 가는 곳이다.
내가 즐겨 주문하는 메뉴는 샤브샤브 아니면 국수전골이다. 신선한 각종 야채와 빛깔도 선멸한 쇠고기로 샤브샤브를 해 먹고 난 다음엔 으레 다진 마늘을 듬뿍 넣고 국수를 끓여준다.
남의 비방을 알아내면 지적 소유권 문제가 되겠지만 이 집의 국수 맛은 밀가루에 무엇을 더 넣었는지 특별하다. 그리고 금상첨화라 할까. 내가 또 좋아하는 것은 늘 안성맞춤으로 익혀 군침이 도는 시원한 배추김치 맛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