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요구로 북한인 직원 채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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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개성공단에 진출한 우리은행이 지난해 북측의 강력한 요구를 못 이겨 북한인 직원을 고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또 2004년 지점 설립을 앞두고 은행의 전산장비 거래 업체가 "미국 정부의 지시로 개성공단지점 반입용 전산 장비를 판매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같은 사실은 국회 정무위 소속 이계경 한나라당 의원이 20일 입수한 우리은행 자료 등을 통해 공개됐다.

◆ 북측의 직원 채용 강요=개성공단지점 측이 지난해 7월 본사에 보낸 '현지직원 채용 보고'에 따르면 지점 측은 유치원 경리로 5년간 일했다는 임모(25.여)씨를 현지 채용했다.

임씨는 개성고등경제전문대학 출신으로 환전.서무보조 업무를 맡았다. 지점 측은 "북측의 강력한 추가 채용 요구를 수용했다"고 보고했다.

채용 절차에 대해선 "북측 노력알선기관의 일방적인 인력 배치 후 노력알선 계약 체결"이라고 보고했다. 이에 앞서 지점 측은 2004년 12월 같은 대학 출신인 김모(24.여)씨를 채용했다. 그러나 우리은행 측은 당초 '신설 계획서'(2004년 11월 작성)에서 남한 직원 3명으로 지점을 운영할 방침을 세웠다. "향후 주변 여건을 고려해 적절한 시기에 현지직원 채용을 고려한다"는 조건을 달아서였다.

이 의원 측은 "개성공단지점이 적자 운영의 와중에서 대학졸업증명서도 받지 못한 채 북한인 직원을 채용한 이유가 석연치 않다"고 주장했다. 지점 측의 거래 내역과 영업 비밀을 탐지하기 위해 북측이 채용 요구를 했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 IBM 전산장비 매각 불허=미 정부가 전산장비 판매를 통제한 사실도 드러났다. 은행 측은 "당행 주요 전산장비 구입처인 IBM 측에서 미 정부의 지시로 개성공단지점 반입용 전산장비를 판매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고 밝혔다.

이는 은행 전산장비 중 핵심 서버에 해당하는 RS6000과 기타 전산장비들이 대북 반입금지 품목(전략 물자)에 해당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은행 측은 노트북.데스크톱 PC에 프로그램을 설치해 은행 업무를 처리해 왔다. 이 의원 측은 "전략 물자 반출에 대해 한.미 간의 경각심이 확연히 다르다"고 꼬집었다.

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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