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Review] 배꼽 잡는 조상들의 개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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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어떤 상황에서도 통하는 유머가 있는 반면, 이렇게 최소한의 배경지식이 있어야 알아듣는 유머도 있다. 지금 유통되는 유머도 그럴진대 옛날 유머는 오죽할까. 이 책은 오래된 유머, 조상의 우스개에 해설을 단 책이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해학에 정평이 난 한 청년이 우별감(禹別監)이란 자에게만 절을 하고 양도감(楊都監)에게는 절을 하지 않았다. 양도감이 "왜 내게는 절을 하지 않느냐"고 하자 청년은 곧장 절을 하고는 "우는 보았으나 양은 못 보았나이다(見牛未見羊)"라고 말한다.

저자는 이 농담이 '맹자'의 양혜왕편에 나오는 '견우미견양(見牛未見羊)'이란 구절을 패러디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우별감의 우(禹)와 양도감의 양(楊)이 우(牛), 양(羊)과 동음이라는 점을 이용한 우스개라는 것이다.

이렇게 전문지식을 알아야 웃을 수 있는 우스개를 '식자소화(識者笑話)'라 부른다. 이런 식자소화에 동참하지 못하는 무식한 선비라면 단연 놀림감이 되었을 것이다. 저자는 '고문진보(古文眞寶)'를 '우장직실(右丈直實)'이라 읽기도 하고, '자왈(子曰)'을 '자일(子日)'로 읽었을 이들을,'Danger(위험)'란 경고문을 '단 거'라고 읽고는 내용물을 홀짝 들이켰다는 누군가에 빗대 이야기한다.

물론 요즘 사람들 상당수가 '자왈'을 '자일'로 읽는 한자(漢字) 맹에 속할 것이다. 비록 해설을 달아놨지만 식자소화 앞에선 웃음이 나기는커녕 머리가 지끈거릴지도 모른다. 불행히도 풍문으로 떠돌기만 한 옛 우스개는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다. 글(한문)을 읽고 쓸 줄 아는 지식인 남성들의 그것만이 전하니, 약간의 두통은 감수할 수밖에.

여기서 궁금증 하나. 학문에 매진해야할 선비들이 어찌하여 우스개집을 곁에 둘 수 있었을까. '논어'의 양화(陽貨)편에 공자는 제자 재여(宰予)가 낮잠 자는 걸 몹시 꾸짖어 "바둑이나 장기도 있지 아니한가. 그것이라도 하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오히려 낫다"고 했다. 선비들이 공자의 일화를 빌어 '낮잠 자는 것보단 우스개집이라도 읽어 잠을 쫓는 게 낫다'고 주장할 수 있었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잠을 막는 방패라는 의미의 '어면순(禦眠楯)', 잠을 막는 새로운 이야기란 뜻의 '어수신화(御睡新話)', 잠 깨우는 글이라는 '파수록(破睡錄)' 등이 우스개집 제목이 된 까닭이다.

다행히 '친절한 저자'는 한자 사용을 가급적 자제했다. 다음 사례처럼 전문지식이 없더라도 두통 없이 웃을 수 있을 만한 우스개도 많이 담았다.

건망증 심한 원님이 이방의 성이 홍씨임을 잊어버리곤 했다. 그래서 하루는 벽에 홍합을 그려 놓는다. 다음에 이방이 찾아왔을 때 원님은 홍합 그림을 보고 묻는다. "자네 성이 보(寶)씨인가?"-'교수잡사(攪睡雜史)'

뒤이어 영화 '연애의 목적'에서 조개를 좋아한다는 여주인공에게 남자 주인공이 "나는 다른 조개가 먹고 싶은데"라며 수작을 거는 이야기가 이어지는 등 요즘 유통되는 우스개도 심심찮게 담겼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홍합을 여성의 성기에 비유하는 데에는 유구한 전통이 있다"며 능청을 떤다. 저자는 조선시대에도 '공처가' 우스개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오늘날의 한국 남성들도 '사면처가(四面妻家)'의 상태에 놓여있다고 한다"며 옛날식 우스개를 던지기도 한다.

저자는 서문에서 원래 자신이 유머와는 거리가 먼 뻣뻣한 인물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오랜 시간 우스개를 들여다보다가 그 언어에 감염된 결과"로 이렇게 책 곳곳에서 농을 던지게 됐단다. 저자의 말마따나 조상의 우스개 속에서 노닐면서 유머지수를 조금이나마 높일 수 있을 듯하다. 우스개를 통해 들여다본 옛 풍속도 재미있다. 지식도 얻고, 웃기도 하면서 식자소화에 동참해봄이 어떠할지.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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