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독의 단계(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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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서독의 대동독 내지 통독정책을 시대적으로 보면 크게 세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아데나워시대,브란트시대,그리고 콜시대다.
아데나워시대는 전후의 냉전논리에 따라 강경한 반공정책으로 일관했었다. 그는 서독만이 유일한 합법국가임을 주장하면서 할슈타인원칙을 고수,동독의 외교적 고립화를 강력히 밀고 나갔다.
그러나 옹고집 아데나워도 동독과의 정치회담등 공식적인 채널은 닫아 놓으면서도 비공식 채널은 항상 열어놓고 있었다. 이 통로를 통해 양독은 그때 그때 현안문제를 해결하곤 했었다.
동서독관계에 획기적 변화가 나타났던 것이 바로 브란트시대다.
브란트는 이른바 「동방정책」이란 기치를 내걸고 동서독간의 경계를 사실상의 국경으로 간주,비록 서로가 외국관계는 아니지만 제2의 독일국가로서 동독의 실체를 인정하고 나섰다.
그리고 1972년에는 역사적인 「동서독 기본조약」을 체결함으로써 평화구조의 주춧돌을 놓았던 것이다.
그는 동독정부를 서독정부와 대등한 위치로 격상시켜 모든 문제를 협상을 통해 해결코자 했다. 그 과정에서 브란트는 미묘한 이데올로기에 얽힌 난제들은 가급적 뒤로 미루고 보다 실질적인 경제ㆍ과학ㆍ기술ㆍ교통ㆍ우편ㆍ보건기구ㆍ문화ㆍ스포츠및 환경보호 등 여러 영역에서의 협력촉진을 관계개선의 돌파구로 삼았다.
사민당정권이 물러나고 기민당정권이 들어서면서 콜시대가 열렸다.
콜은 취임도 너무나 특색없는 정치스타일 때문에 국민들의 유머거리가 되었던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그러나 그는 게르만민족 특유의 미덕인 고지식함과 끈기로 기회가 오자 독일문제들을 솜씨있게 풀어나갔다.
시민혁명으로 베를린장벽이 헐리자 경제를 통합하여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동독을 수중에 넣었다. 그리고 나토잔류문제,국경문제까지 거뜬히 해결하여 그야말로 통독문제를 바로 눈앞에까지 이끌고 왔다.
우리에게도 반공일변도의 이승만시대,7ㆍ4공동성명의 박정희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브란트시대 또는 콜시대의 평가는 역사에 어느 정권이 기록될지 아직은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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