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일본 = 가상적국' 표현 요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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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준(무소속) 의원이 "지난해 10월 열린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한국 정부가 일본을 '가상 적국(敵國)'으로 적시할 것과 '핵우산 제공' 문구를 삭제할 것을 미국 정부에 요구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17일(현지시간)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의 주미 한국대사관 국정감사에서였다. 정 의원은 "한국 정부가 그런 주장을 했으나 미국 측이 거절한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의 책임 있는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미국과 일본의 동맹 관계를 고려할 때 한국 정부가 과연 이런 의견을 제시했을 수 있겠느냐'는 물음에 정 의원은 "(한국 정부가) 핵우산 제공이란 문구를 삭제하자고 한 요구도 정상적으로는 생각하기 어려운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는 "일본은 한반도 유사시 미군에 대한 후방지원 임무를 맡도록 관련 법규를 마련하고 있는 만큼 우리가 (일본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일본을 가상 적국이라고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정부 안에 있어서 참으로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정 의원이 이태식 주미대사에게 "이런 사실을 아느냐"고 질의하자 이 대사는 "잘 모르긴 하지만 SCM에서 그런 문제가 제기됐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러나 워싱턴의 한 외교소식통은 "정 의원 전언이 맞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정 의원은 지난해 SCM에 깊이 관여한 미국 측 인사를 이날 만나 그런 얘기를 들은 것으로 안다"며 "그때 한국 대표단이 동북아에서 일본의 잠재적 위협이 크다는 점을 강조하며 '가상 적국' 얘기를 꺼내자 미국 측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며 일축했다"고 밝혔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 가상적국(假想敵國)이란=한 국가가 외교안보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자국의 안보에 위협이 될 것으로 판단해 적국으로 가정하는 나라다. 각국 정부는 통상적으로 가상적국이 어디인지 공개적으로 밝히지는 않는다. 남북한은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라 휴전 상태이므로 북한은 가상적국이 아니라 실질적인 적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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