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인의이것이논술이다] <끝> 글짓기 연습보다 중요한 건 생각 훈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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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나이에 원고지 잘 쓰기와 생각을 조리 있게 하기 중 더 익히기 어려운 쪽은 당연히 후자이다. 시간도 더 걸리고 만만치 않은 일이다. 대학에서 학생을 선발하는 교수 입장에서도 당연히 후자의 능력을 갖춘 학생을 선호하게 마련이다.

본말이 전도되어서는 안 된다. 근본은 사고력이요, 이는 곧 철학이다. 보조적인 것은 작문이요, 상대적으로 고치기 쉽다. 논술을 말하면서 글짓기와 작문에만 머물면 곤란하다. 논술은 철학이어서, 훈련이 필요하다.

물론 교과목으로서의 철학은 아니다. 이른바 '통합 논술'에서 '통합'이란 교과의 통합이 아닌 사고의 종합을 뜻한다. 사고의 종합을 다루는 가장 오래되고 근본적인 학문이 철학이다. 이런 의미에서 철학은 모든 학문의 저변을 관통하는 능력이다.

많은 이들이 학교 현장의 한계를 언급하며 통합 논술이 시기상조라고 한다. 일면 일리가 있으나, 발상을 전환해 보면, 과연 언제 통합 논술을 시작할 조건이 마련될 수 있을까? 조건이 마련되길 기다린다면 아예 시작조차 할 수 없다. 사회적인 득과 실을 따져 보아야 한다. 미래의 사회 구성원에게 생각하는 힘을 기르도록 강제하는 것, 그것이 통합 논술이다. 그것은 시대의 요청이다.

게다가 논술은 이미 처음부터 통합 논술이었다. 10년이 훨씬 넘게 시행된 역사가 있다. 왜 지금 갑자기 호들갑일까? 비난의 여지를 무릅쓰고 말한다면, 가르치는 이들 쪽에서 더 노력할 의사가 없기 때문 아닐까?

예부터 '교학상장(敎學相長)'이라 했다. 가르침은 배움의 확장의 계기이며, 배움은 가르침의 시작이다. 가르치는 이는 항상 스스로 더 배워야 하며, 가르침을 통해 스스로의 한계를 느끼면서 배움을 넓혀가야 한다. 이것이 선생과 교사의 운명이다. 과연 이 운명을 얼마나 사랑하는가?

나 또한 공교육과 사교육을 오가면서 끊임없이 자문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먼저 솔선수범하여 배우지 않으면 가르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상황이 어려울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앎의 사랑, 그것이 곧 서양에서 철학(philosophia)의 어원이기도 했다.

지엽말단에 집착하면 본질에 다가갈 수 없다. 논술을 말하면서 제발 원고지 사용법만 들먹이지는 말라. 자신의 사고력을 키우고 타인의 사고력을 함께 키울 수 있는 길을 찾아라. 자신의 삶의 철학을 키우며 학생에게 철학을 북돋워라. 또는 우선 소크라테스의 물음을 되물어라. 나는 얼마나 아는가? 나 자신은 가르칠 자격이 있는가? 이 물음에서 시작하지 않았다면,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말라.

통합 논술은 교사의 통합적 재교육에서 완성된다. 이는 철학과 인문 정신이 모든 교사의 기본이 되어야 함을 뜻한다. 만약 교사가 교사의 자격을 갖추고 있다면 지금 당장 통합 논술을 가르칠 수 있다. 거꾸로 통합 논술을 가르칠 수 없다고 말하는 교사라면 자신의 자격부터 반성해야 마땅하다. 대학에서 출제될 통합 논술도 이 맥락에서 성사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재인 유웨이중앙교육 오케이로직학원 대표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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