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라도 모셨으면…”(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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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아키히토는 한국인 희생자에게 공개 사죄하라.』
『희생자 모두의 유해를 발굴,송환하라.』
12일 오후5시 영등포역앞 광장.
40여명의 노인들이 불볕더위 속에서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한데 모으고 있었다.
지팡이에 의지한 70대 할아버지,빛바랜 아버지의 영정을 목에 건 50대 아주머니,백발이 성성한 할머니 한결같이 검게 그을은 얼굴들이었다.
징용ㆍ징병으로 끌려가 희생된 사람들의 유해송환과 피해보상을 일본정부에 요구하며 한달간의 전국 도보행진에 나섰던 태평양전쟁희생자 유족회 회원들이다.
『선친들의 유해만이라도 그리던 고국땅에 모실수 있게되기를 비는 마음을 온 나라에 전하고자 이 일에 나섰습니다.』
지난달 15일 부산을 출발,1천2백리 길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걸어온 유족회 상임이사 양순임씨(45ㆍ여)는 50년전 노무자로 일본에 끌려가 남양군도에서 행방불명된 시아버지의 유골이라도 모셔오고 싶다고 했다.
그을대로 그을고 더 이상 벗겨질 곳조차 없는 양씨의 검붉은 얼굴,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지기도 두차례,벗겨지고 헐기를 거듭한 발바닥은 검은 딱지가 엉겨붙어 차마 눈뜨고 볼수가 없었다.
추풍령에서는 트럭에 부딪쳐 병원신세를 지기도 했으나 오로지 발로 걸어서 서울까지 올라온 양씨였다.
아버지의 유골을 찾겠다는 백발의 김성곤씨(67)는 태평양전쟁 막바지에 아버지와 함께 사할린의 한 탄광에 끌려갔다가 혼자 돌아온 것이 한이라고 했다.
또 서경희씨(50)는 자신이 세살때 노무자로 끌려간 아버지의 생사를 확인할 길이 없어 아직도 호적정리를 못하고 있다고 울먹였다.
『유족들의 절박한 아픔을 우리 국민들이 관심을 갖고 어루만져줄 때 일본정부도 문제해결에 나설 것입니다.』
국내외에 보낼 호소문을 만들어야 한다며 지친 몸을 일으키는 양씨의 모습에서 역사가 남긴 우리민족의 아물지 않은 상처를 보는 듯했다.<김남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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