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강경책 탓" "대북 사대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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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북한 핵실험에 대한 '미국 책임론'을 두고 여야 대립이 팽팽하다.

미국 책임론이란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게 된 데는 대북 강경책을 고집해 온 미국 행정부의 책임이 크다는 주장이다. 대북 포용정책을 고수하며 미국 내 강경론자들과 미묘한 갈등을 빚어 온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 일각에서 이런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포용정책의 원조 격인 '햇볕정책'의 창시자 김대중(DJ) 전 대통령도 최근 "북핵 사태는 미국의 대북 정책 실패를 입증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핵실험의 책임은 모두 북한에 있다"며 이런 미국 책임론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 "미국 책임 묻는 건 대북 사대주의"=한나라당 김형오 원내대표는 13일 주요 당직자 회의에서 "정부와 여당이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고 맹공했다. 그러면서 "한.미 동맹을 강화하고 유엔 등 국제사회와 뜻을 모아 위기를 극복해야 할 때 미국 책임론을 들먹거리고 있는 게 말이 되느냐"며 "이런 생각(미국 책임론)에 연연하는 국무총리와 안보장관들은 즉각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김 대표는 "현 정부가 '대북 사대주의'에 젖어 있다"고 목청을 높였다.

전재희 정책위의장도 "정부와 여당이 미국 책임론을 언급하며, (포용정책으로) 유턴하고 있다"며 "지금은 핵실험을 강행한 북한에 명확한 제재 의지를 보여줘야 할 때"라고 말했다. 나경원 대변인도 "미국 책임론이야말로 해괴한 논리"라며 "이런 발언의 배경에 북핵이 우리 것이라는 철부지 같은 생각이 있는 게 아닌지 묻고 싶다"고 가세했다.

◆ "미국 책임론이 세계적 여론"=하지만 열린우리당 내에서는 미국 책임론이 점차 힘을 받는 모양새다. 정동영 전 당의장은 이날 한 인터뷰에서 "부시 행정부가 지난 6년간 나쁜 행동에는 보상이 없다는 의미에서 북한과 직접대화를 피했다"며 "하지만 비핵화가 중요하다면 마주앉지 못할 이유가 뭐냐"고 말했다. 돌려 말했지만 '미국 책임론'이다.

또 열린우리당 소속 의원 77명도 이날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줄줄이 미국 책임론을 거론했다. 최성 의원은 "북한 핵실험에 대해 국제사회가 부시 행정부의 대북 압박정책에 가장 큰 책임을 돌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정청래 의원도 "북한 핵실험 강행은 부시 행정부 대북 강경정책의 실패라는 것이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 세계 유수 언론들, 그리고 한국 국민의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한명숙 국무총리도 11일 국회 긴급 현안질의에 나와 "핵실험의 1차적 책임은 북한에 있지만, 미국의 제재와 금융압박도 한 원인"이라고 답변했다.

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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