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고위층」을 보고 싶다/송진혁(중앙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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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인사이동때 부하들로부터 5백만원,1천만원씩 받은 도지사와 몇천만원의 뇌물을 받은 청장의 구속을 보고 사람들은 사정당국이 일 한번 시원하게 잘 한다고 할까,아니면 우리 공직사회가 이렇게 부패했으니 참 큰일 났구나 하고 생각할까.
모르긴 몰라도 시원하게 생각하는 사람보다는 큰일 났다고 생각하는 쪽이 훨씬 많을 것이다. 시원하게 생각하기는 커녕 적발된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그 수많은 고위공직자중에서 유독 그 지사나 그 청장만 물욕이 많아 그런 짓을 했다고 볼 수는 없다.
유독 경북도공무원만이 극성이어서 그처럼 돈까지 주고 인사운동을 했다고 볼수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결국 그런 일을 가능하게 하는 이 시절 공직풍토에 있으며 이번에 드러난 것은 그런 풍토에서 일어난 그런 일중에서도 정도가 심한 것,더 표가 나게 저질러진 것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다시 말해 경북도나 철도청에서 일어난 일은 다소간의 정도차이로,시기나 형태의 차이로 다른 관청에서도 일어나고 있거나 얼마든지 일어날 개연성이 있는 일이다.
이것은 우리의 경험측에 의해 보면 자명한 것이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공직이 부의 중요한 원천이 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으며,이런 저런 전문과 체험과 눈치를 통해 신문ㆍ방송에 나지 않더라도 돈과 관계된 공직풍속을 알고 있다.
가령 몇해 전에 들은 이런 얘기는 이젠 현실에 존재하지도 않는 전설일 뿐일까.
80년대의 어느 때 이권부처도 아닌 어느 부의 장관을 지낸 인사의 얘기다.
『인사때가 되자 밑에서 줄줄이 돈을 싸들고 찾아와 깜짝 놀랐다… 설마 그럴줄은 몰랐다. 모두 혼을 내서 돌려보냈지만….』
이런 경우 혼을 내지않고 돌려보내는 장관도 있었을 법 하고 혼내기는 커녕 파안대소로 맞았다면 그건 전경북지사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특정산업분야를 관장하는 어느 부의 경우 장관이 새로 취임하면 관련 대기업에서 취임초에 여기저기 쓸데가 많지 않겠느냐고 「큰것 한장」을 놓고 간다는 얘기도 있었다.
물론 우리는 이런 얘기들의 진부는 확인할 길이 없다. 다만 이 사회를 오래 함께 살면서 갖게된 경험측에 의해 그저 고개를 끄덕끄덕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공직풍토에서 정부가 주기적으로 서정쇄신이니 정화니 특명사정이니 하는 것을 하게 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또 그런 단속과 적발의 한파를 주기적으로 겪으면서 갖다 바치고 접수하는 기술도 점점 세련되고 원숙해지는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이 될 수 없다. 먹되 탈없이 점잖게 먹고,주되 문제 안되게 모양좋게 주는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해온 것이다.
과거 한때 점잖기로 이름이 있었던 어느 요인은 공직생활중 잡음이 없었지만 1년에 한번정도 입원했다고 한다. 휘하 기관장과 공무원들이 줄줄이 문병을 오고,오는 사람이면 으레 빈손으로 오겠느냐는 것이 그때 나돈 얘기였다.
지금도 공무원사회에서는 이런 말이 무슨 진리처럼 통하고 있다.
잘먹고 잘쓰는 사람은 걸리지도 않거니와 출세도 빠르고,못먹고 못쓰는 사람은 그저 늘 중간치나 가고,잘먹되 안쓰는 사람은 결국 당한다는 것이다. 결국 잘먹고 잘쓰라는 얘기인데,밖에서 보자면 잘 먹고도 안쓰면 꼭 당한다는 것도 1백% 확신은 안가는 말이다.
정치권에 오면 돈풍속은 좀더 거칠고 노골적이다. 「얻어쓴다」 「뜯는다」는 말이 공공연하고 정치자금과 개인소득이 구별이 안되는 만큼 공사의 구분이 뒤죽박죽이다.
세비로는 어림도 없는 국회의원들이 아마 가장 자주 하는 푸념이 『돈없어 죽겠다』는 것이지만 실제 많은 관찰에 따른다면 많은 의원들이 의원생활 과정에서 세간살이가 늘면 늘었지 주는 경우는 보기 어렵다. 빚얻어 선거를 치렀다는 초선의원들중에 얼마후에 보면 언제 바꿨는지 고급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수두룩하고 전세로 들었다는 서울집이 얼마안가 그럴 듯한 아파트나 단독주택으로 변하는 경우도 많다.
정말 탄복할 만한 일은 많은 전직의원들이 장기간 직업없이도 잘 지낸다는 사실이다. 손도 크고 쓰임새도 많은 그런 분들이 4∼5년씩,길게는 10년이상 직업을 안 갖고도 유유히 견디는 것을 보면 보통 사람들로서는 불가사의하다고 할 밖에 없다.
결국 우리나라는 아직도 공직이 곧 부와 연결되는 조선조이래의 전통에 살고 있음을 부인할 길이 없다. 정부가 이른바 총체적 난국을 맞아 비리척결의 칼을 뽑았지만 이런 뿌리깊은 공직풍토를 그대로 두고는 백년하청일 뿐이다.
이런 풍토를 바로잡자면 정부가 난국을 맞아 그 타개책의 하나로 사정활동을 벌인다는 식의 접근으로는 불가능하다. 「사정강조기간」만 지나면 다시 그전으로 되돌아 갈 것은 뻔한 일이다. 위법이라면 강조기간이 아니더라도 위법이요,위법인 이상 제재가 있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지금껏 정부는 강조기간에만 칼을 휘두를 뿐 평소에는 그냥 넘어간다.
정부가 정말 깨끗한 공직사회를 만들 의지가 있다면 내부적으로 종합적이고도 장기적인 비리척결계획을 세워 최고위층의 지속적 관심아래 사정활동을 상시적으로 벌여야 하고,밖으로 공직사회를 감시할 국회ㆍ언론ㆍ시민단체등의 활동영역을 넓혀나가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고위층이 되면 다 부자가 된다는 통념을 깨야하며,그러자면 고위층의 모범이 필요하다. 「부자아닌 고위층」,나아가 「가난한 고위층」의 실례들이 나와야 구조화되고 계열화된 부패의 고리를 깨는 단서가 잡힐 것이다.<편집국장 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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