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실험' 터 닦은 과학자는 46년 월북한 도상록 교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1903~1990년>
핵실험을 강행한 북한의 오늘을 있게 한 월북 과학자가 있다. 해방 직후 서울대 교수로 있다가 1946년 5월 월북해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던 도상록(사진) 교수다.

북한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도 교수는 원자력 이론서 30여 권을 집필하고 핵가속 장치를 개발해 김일성대학에 설치하는 등 북한 핵개발의 기술적 토대를 마련했다. 그래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배려는 각별했다고 한다.

김정일은 80년 10월 노동당 제6차 대회 당시 도 교수를 당대회 대표(대의원에 해당)로 임명했다. 83년에는 '인민과학자' 칭호와 김정일 명의의 표창장까지 주면서 격려했다.

도 교수가 노환으로 교단에서 더 이상 가르칠 수 없게 되자 김정일은 대학교수직을 유지한 채 자택에서 핵 관련 연구를 계속할 수 있게 조치했다. 1903년생인 도 교수는 90년 87세로 사망했다. 그의 유해는 평양 애국열사릉에 묻혔다. 또 조선혁명박물관에 도상록의 사진을 걸어놓고 그의 업적을 기리도록 했다.

북한 탈출 뒤 남한으로 온 한 고위인사는 "도상록이 닦아놓은 이론적.기술적 토대가 없었다면 북한의 핵개발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일성도 생전 도 교수에게 '원사' 칭호를 주고 김일성훈장을 수여하는 등 각별히 챙겼다. 북한에서 원사란 과학분야 발전에 공헌한 원로 학자에게 주는 최고의 명예 칭호다. 북한 신문들은 김일성 주석이 수차례나 김일성대학을 찾아가 그를 격려했다는 일화를 전하고 있다.

함경남도 함흥 출생인 도 교수는 일본 도쿄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했다. 졸업 뒤 개성 송도중학교 교원 시절에는 '헬륨수소 분자의 양자역학적 취급' '수소 가스의 양자역학적 이론'이란 논문 두 편을 미국 학술지에 발표해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이어 중국 창춘(長春)공업대학.서울대에서 근무했다.

월북 뒤에도 그는 핵물리학 분야 등에서 14개의 새로운 과목을 개척하고 4만 쪽에 가까운 교재를 직접 집필하는 등 왕성한 연구활동을 했다.

정부 당국자는 "김일성.김정일 부자가 도 교수를 각별하게 대우했던 것은 그만큼 핵개발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는 증거 아니겠느냐"고 설명했다.

이영종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