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려지 출국을 길조로 본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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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동구와 아시아 공산국가가 페레스트로이카의 충격에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인 근본 이유는 동구 공산혁명이 2차 대전후 소련군의 진주아래 위로부터 뒤집어 씌운 것이었던 데 반해 중국을 비롯한 몇몇 아시아국가의 경우 자생적 혁명으로 공산체제가 성립되었다는 것이 통설처럼 되어있다.
이 가설은 페레스트로이카의 바람이 불어왔을 때 유럽을 가로지른 철의 장막이 몇달사이에 허물어져 내리고 선거만 했다하면 공산당이 패배한 현상을 잘 설명해 준다. 그러나 이 설명은 페레스트로이카를 불가피하게 한 이유,즉 공산세계의 경제적 낙후성과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서방 기술과 자본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실용적 측면은 소홀히하고 있다.
실용주의 측면은 공산혁명의 형식이 갖는 변화의 잠재성보다 더 폭넓은 개혁의 동인이 되어왔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 공산혁명의 자생력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경제적 개방과 교류의 필요성은 결국 동구든 아시아든 간에 모든 공산국가의 개혁을 유도하는 주된 유인이 되고 있다고 본다.
우리는 그런 시각에서 중국이 인권과 개혁을 주창해온 방려지부부를 천안문사태 1년만에 영국으로 가도록 허용한 조치에 큰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 방려지는 중국당국에 의해 천안문사태의 사상적 대부로 낙인찍힌 인물이다. 이때문에 그가 북경주재 미 대사관에 피신하고 있던 지난 1년동안 중국은 중국대로 그를 인도받아 처벌하는 것이 천안문사태의 수습을 매듭짓는 길이라고 보았고,서방세계는 그들대로 그의 자유가 중국과의 관계회복에 필수적 조건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중국은 결국 이 밀고 당김에서 실용적 선택을 한 것이다. 즉 방려지문제가 담고 있는 원칙을 고수하는 것보다는 그를 풀어줌으로써 서방세계와의 경제교류를 원활히하는 쪽을 택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천안문사태이래 개방ㆍ개혁노선을 움츠려온 중국 지도층의 변화 가능성을 보게 된다. 아직은 물론 중국이 천안문이전의 행보로 개방ㆍ개혁을 다시 시작하리라고 보는 것은 속단이다.
1년동안의 내부수습을 통해 이제는 아래로부터의 도전없이 개혁을 점진적으로 시도해 볼만 하다는 자신이 생겼는지 모른다. 또 내부 권력관계에서도 보수파가 수세에 몰리고 다시 「개혁파」가 득세하고 있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어떤 배경에서 나온 결정이든간에 중요한 것은 천안문사태직후의 현상고정방식에서는 벗어나야겠다는 실용적 판단이 방씨부부의 출국으로 구체화했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와같은 중국쪽 선택의 의미를 아시아 공산국가들,특히 북한체제의 향방과 관련시켜 평가할 필요가 있다. 동구권의 개혁과 개방이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에 의해 추진력을 얻었던 것과 비슷한 논리로 자생적 공산혁명의 뿌리를 가진 중국이 다시 개방과 개혁을 시도할 경우 북한을 비롯한 다른 아시아 공산국가에도 파급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방려지 부부의 자유를 그 자체로도 환영하면서 그 상징성이 결국 아시아 공산국들의 변화를 예고하는 길조이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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