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핵실험후한반도下

핵이냐 미래냐, 북 압박 나선 미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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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지난 9일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 "북한은 국제사회의 뜻을 거역했으며 국제사회는 이에 대응할 것"이라고 함으로써 단호한 메시지를 던졌다. 그는 '한반도 비핵화'의 필요성을 강조함과 동시에 북한에 의한 '핵 확산' 가능성에 엄중히 경고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 긴급성명의 키워드는 '북한의 미래'였다. "(북한의) 위협은 북한 주민들의 '더 밝은 미래'를 가져오지 못할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경우 미래를 보장받을 수 없게 될 것임을 시사했다.

같은 날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의 부연 설명이 뒤따랐다. 그는 "미국은 북한이 핵을 가지면 미래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 모든 것을 다할 것"이라고 함으로써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강력한 압박과 제재의 수순에 돌입할 것임을 명확히 했다. 북한의 머릿속에서 미래의 희망을 지워나가는 '지우개' 역할을 미국이 직접 자임한 셈이다.

부시 행정부는 일찍이 북한이 협상을 통해 핵을 포기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간파하고 북한 정권에 압박을 가하는 전략을 펴왔다. 미국은 북한이 체제의 특성상 '국가안보'보다 '정권안보'가 우위에 있는 존재이므로 북핵 문제라는 국가안보 사안을 해결하기 위해선 정권안보를 압박하는 전략이 유효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따라서 김정일 정권의 '불법 금융행위'와 '인권침해'를 문제 삼아 정권안보에 압박을 가함으로써 북한이 6자회담에 나와 적절한 보상을 받고 핵을 포기하도록 유도해 온 것이다. 이러한 전략은 북한의 핵실험 이후에도 유효하다.

미국은 유엔을 적극 활용해 북한 핵 문제가 북.미 양자 문제가 아닌 범세계적 문제라는 점을 부각해 나갈 것이다. 유엔 안보리는 지난 6일 북한의 핵실험 계획 포기를 촉구하는 '의장성명'을 채택하면서 북한이 유엔안보리 결의 1695호의 모든 조항을 따를 것을 강력히 요구했으며, 이를 무시할 경우 유엔 헌장하의 책무에 부합하는 행동, 즉 유엔헌장 제7장에 따른 제재에 나설 것임을 분명히 했다. 북한이 이를 무시했으니 조만간 유엔헌장 제7장의 내용을 상당부분 반영한 대북 결의안이 채택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이미 9일 유엔 헌장 제7장에 따른 대북 제재 결의안 초안을 제출했다.

미국은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안을 채택한 후 이른바 '맞춤형 봉쇄', 즉 북한의 취약점을 최대한 공략함으로써 봉쇄의 효과를 극대화하려 할 것이다. 대북 금융제재를 강화하고,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확대, 북한 교역품에 대한 해상 검문검색, 미사일 방어(MD)체제 강화 등의 조치를 단계적으로 취해 나갈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과 중국이 어떤 태도를 보일지가 중요하다.

미국에 의한 대북 군사제재는 영변 핵시설을 제외하곤 공격 목표를 명확히 확보하기 힘든 상황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중동의 테러집단에 판매하려는 의도를 본격적으로 드러내 미국의 반확산 정책에 정면으로 도전하지 않는 한 미국은 군사적 제재를 최대한 자제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 정권이 정권을 지탱하기 힘든 최대의 위기에 봉착했다고 판단할 경우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그들이 보유한 최후의 카드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없어지면 위기가 증폭될 가능성은 상존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핵무기를 팔 의향이 있다고 본다"는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의 언급은 이러한 최악의 시나리오를 염두에 둔 것이다.

결국 한국은 한반도의 진정한 주인으로서 한반도 비핵화와 통일을 이룩해 내기 위해 철저한 한.미 공조체제를 바탕으로 북한이 핵무기와 미래 중 후자를 택하도록 해야 한다. 이제는 강력한 대북 '메시지'를 던지는 수준을 넘어 왜 북한이 핵을 가지면 안 되는지를 국제사회와 함께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할 시점이다.

김성한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미주연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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