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미묘한 입장변화, 남북경협은 지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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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실험과 관련한 노무현 대통령의 인식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역할이 축소되는 쪽으로 사태가 변하고 있다"는 판단에서 "한국의 자율적 영역이 넓다"는 방향으로 입장 변화가 나타난 것.

노 대통령은 11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윤만준 현대아산 사장 등 남북경협 관계자 15명을 청와대로 초청, 오찬을 함께 한 자리에서 "한국 국민과 정부가 가지고 있는 자율적 영역이 넓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 "국제사회의 조율을 해야지만 국제사회에서 한국도 발언할 일이 있다"며 "국제사회 조율시 의사가 반영돼야 하고 해석과 적용에 있어서 한국 입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는 지난 9일 북한 핵실험 발표 이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국의 역할이 축소되는 쪽으로, 한국의 자율성이 많이 축소되는 쪽으로 사태가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고 밝힌 것과는 다소 차이가 느껴지는 발언이다.

노 대통령은 당시 "이제 한국이 소위 제재와 압력이라고 하는 국제사회의 강경 수단 주장에 대해 대화만을 계속하자 강조할 수 있는 입지가 상당히 없어진 것이 아닌가"라며 "대화를 강조할 수 있는 입지가 현저히 위축됐거나 상실되고 있는 객관적 사실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날 남북경협 관계자들과 오찬 회동에선 "어떤 정책을 취하든 정부가 독단적으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게 아니고 국제사회의 조율이 필요하다"고 전제하긴 했으나 2일 전과는 달리 "한국의 자율적 영역"을 강조했다.

이 같은 노 대통령의 태도 변화는 전날 국내 정치 지도자들과의 잇단 회동에서 청취한 여론 때문인 것으로 파악된다.

노 대통령은 전날 여야 5당 대표 및 원내대표, 전직 대통령들과 조찬, 오찬 회동을 잇달아 가졌다. 이날 회동에서 한나라당을 제외한 나머지 정당들은 대개 남북경협이 계속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포용정책의 효용성을 인정하는 입장을 보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군사적 징벌, 경제적 제재, 대화를 통한 해결 등 3가지 중에서 실질적으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대책은 대화를 통한 해결밖에 없다는 의견을 밝혔다.

한나라당이 "현찰이 들어가기 때문에 남북경협은 중단돼야 한다는 것"이라는 의견을 밝히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햇볕.포용정책은 공식 폐기 선언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봤을 때는 소수 의견이었다.

노 대통령은 국내 정치 지도자들의 상황 인식이 대화를 통한 외교적 해결 쪽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자 지금까지 펼친 대북 포용정책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지로 해석하고 힘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이유로 이날 남북경협 관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는 "국제사회 조율시 (한국의) 의사가 반영돼야 하며 해석과 적용에 있어서 한국 입장이 중요하다"고 밝힌 것으로 보인다.

이는 유엔이 결의안을 채택할 시 대화를 강조하는 한국의 의사를 반영해야 하며 대북 제재를 포함한 유엔 결의안이 채택되더라도 이를 해석하고 국내에 적용할 때는 한국의 자율성이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결국, 유엔에서 북한에 경제제재를 가하는 결의안을 채택하더라도 한국을 이를 한국 입장에서 해석하고 적용할 자율성이 있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노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이 유엔에서 북한에 경제제재를 가하는 결의안을 채택하더라도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사업 등 남북경협은 계속할 수 있다는 뜻까지 담고 있는지는 좀더 지켜볼 일이다.

<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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