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다음 카드는 부시에 군축협상 제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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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다음 선택은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에게 군축협상을 제의하는 것이다."

한반도 전문가인 미국 조지워싱턴대학의 김영진(사진) 명예교수는 9일 "북한은 미국이 감히 무력행사를 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판단 아래 핵실험을 감행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렇게 전망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북한 핵실험의 궁극적인 목적은.

"최대 목표는 핵 보유국으로 국제적 인정을 받는 것이다. 핵 보유국으로 인정받는 순간 북한의 정치.군사적 위상은 대단히 높아질 것이다. 미국과 양자 협상을 하기 위한 카드로만 보는 것은 너무 안이하다."

-북한은 부시 대통령이 어떻게 나올 것으로 보고 있나.

"대북 군사조치는 못할 것으로 판단하는 것 같다. 중간선거(11월 7일)를 앞두고 있는 데다 이라크 사태와 이란 핵 문제로 부시 행정부가 경황이 없을 것으로 본 것 같다. 북한에 유화적인 노무현 정권이 바뀌기 전에 핵문제를 매듭지어야 한다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 핵실험 후 국제 사회의 제재는 '고난의 행군'으로 버틴다는 각오다. 중국은 한반도의 완충지대로서 북한의 국가 존속을 바라기 때문에 미국의 무력 행사를 용인치 않을 것이란 게 김정일의 판단이다."

-북한의 다음 수순은.

"한동안 시간을 둔 다음에 군축 회담을 제의할 것이다. 북한 핵 포기를 위한 6자회담이 아니라 한반도와 주변지역의 비핵화(미군 핵을 포함)를 의제로 새로운 다자 회담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는 미국의 압력에 굴복해서 대화에 나오는 것이 아니므로 북한으로서는 체면을 구기지 않는 방법이다. 동시에 미국과의 양자회담도 그 안에서 가능해진다고 생각할 것이다. 지난해 2월 10일 핵 보유 선언 이후 3월 31일의 외무성 담화(군축회담 제의)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부시 대통령의 선택은.

"강경책밖에 없을 것이다. 이란 핵문제도 있기 때문에 미국은 북핵을 결코 인정할 수 없다. 철저한 북한 봉쇄 및 고립화 정책이 불가피하다. 북한의 체제 변화도 시야에 둔다. 현 시점에서 당장 선제공격은 없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미국의 강도 높은 제재가 한두 달 이어지고 북한이 계속 반발하면 상황이 악화되고 무력충돌 가능성이 커진다."

-아무런 해결책이 없을까.

"핵실험을 안 했더라면 돌파구를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미국은 더 이상 유연성을 가질 수 없다.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는 '핵 보유 북한과는 공존할 수 없다'며 미래와 핵무기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북한 편이냐 아니냐 곰곰이 생각해야 할 나라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과 중국을 지칭한 것이다.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북한이 핵기술을 다른 (테러) 집단에 팔 것'이라는 얘기를 자주 한다. 의미심장한 말이다."

-중국 역할은.

"미국에 전적으로는 협력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점점 상황이 나빠져 미국의 무력행사 움직임이 가시화하면 그땐 직접 나서 북한을 설득할 것이다."

-한국 정부는 어떻게 나올 것인가.

"한.미.일 3국이 철저히 보조를 맞춰야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한국은 미국 주도의 제재에 표면적으론 동참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중국과 협조해 강력한 제재조치를 막으려 할 것으로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도쿄=예영준 특파원

◆ 김영진 명예교수는=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후 도미, 펜실베이니아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땄다. 1958년부터 미국 내 여러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미국 조야에 폭 넓은 인맥을 만들었다. 70년대부터 10여 차례 방북, 고위 인사들을 두루 만났다. 지금은 게이오대 교환교수로 일본에 머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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