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실험이 진짜 핵인지, 성공했는지 단정 못해" 노 대통령 발언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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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얼굴) 대통령은 9일 오후 한.일 정상회담 후 한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언급에는 특이한 점이 있었다. 북한의 핵실험이 사실이라고 단정하지 않은 것이다.

노 대통령은 회견에서 "오늘 오전 10시30분쯤 북한에서 진동이 감지됐고 낮 12시쯤 북한이 핵실험에 성공했다는 공식 발표를 했다는 보고를 접했다"고 말했다. 이어 노 대통령은 "핵 실험이 과연 핵인지, 성공인지에 대해 과학적인 검증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나 북한의 공식 발표로 중대한 사태로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함경북도 김책시에서 발생한 지진파가 핵실험에 의한 것이라는 점을 노 대통령이 아직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노 대통령은 기자회견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핵심은 북 핵실험 발표에 대한 대응 방안이다" "핵실험에 성공했다는 공식 발표가 나온 시점에서의 대응은 이전과 조금 다를 수밖에 없다"는 식의 표현을 썼다. 핵실험이라고 단정하는 대신 '북한의 발표'라는 점을 은연중에 강조한 것이다.

이 같은 노 대통령의 태도는 북한이 실제 핵실험을 했는지, 또 성공했는지가 검증되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정보 당국의 판단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윤광웅 국방부 장관은 이날 국회 국방위에서 "방송에 따르면 핵실험이 성공했다고 하지만 세부 결과는 하루 이틀 분석해 봐야 안다"고 밝혔다. 윤 장관은 또 "위치가 (남한으로부터) 먼 곳이라 우리의 자산보다는 미국의 자산을 갖고 좀 더 관찰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인공지진으로 판단되는 지진파를 감지하긴 했지만 이 인공지진이 핵실험에 의한 것인지에 대해선 최종적으로 미국이 운용 중인 첨단 장비의 분석 결과를 기다려 봐야 한다는 얘기인 셈이다. 지진파를 처음 잡아낸 한국지질자원연구원 관계자도 "북한에서 인공지진이 일어난 것은 분명하지만 명확히 핵실험에 의한 것인지는 지진파 분석만으론 파악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북한의 핵실험을 확인하지 않고 있는 것은 미국과 일본 당국자들도 마찬가지다.

토니 스노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핵실험 사실을 공식 확인하지 않은 채 "북한은 지하 핵실험을 실시했다고 주장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진상 파악을 위해 여전히 자료를 분석 중"이라고 밝혔다. 일본의 아소 다로 외상은 이날 "한국에서는 핵실험을 했다고 하지만, 아직 확증이 없다"며 관련 정보를 수집, 분석 중에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일부 정보 당국자는 "북한이 대량의 TNT를 지하에서 폭발시킨 후 핵실험에 성공했다고 주장할 가능성도 있다"는 견해를 조심스레 내놓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이 사실인지, 정말 성공했는지 등에 대한 판단은 주일미군이 북측 지역의 방사능 유출 여부를 분석하기 위해 출격시킨 핵실험 감지 정찰기 WC-135C의 활동과 정찰위성 등의 현장 분석 등이 종합되고 나서야 내려질 수 있을 전망이다.

김성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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