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중견기업] 피죤 … 세제의 국가대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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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피죤 한다"는 말이 있다. "빨래할 때 섬유 유연제를 넣고 헹군다"는 뜻이다. 상처 부위에 "대일밴드를 붙인다"는 말과 같이 브랜드 이름이 마치 일반동사처럼 쓰이는 것이다. 최초의 제품이거나 오랜 기간 확고부동한 시장 점유율을 차지한 브랜드에게만 주어지는 훈장과 같은 표현이다. 생활용품 시장에서 피죤은 뿌리를 내렸다. 1978년 창립 후 유명 다국적 기업과 대기업의 공세에도 밀리지 않았다. 고희(古稀)를 넘긴 이 회사 이윤재(72.사진) 회장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또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7월 중국 톈진(天津)에 현지 공장 착공식을 여는 등 본격적인 중국 공략에 팔을 걷었다.이 회장은 "머지 않아 한국에서처럼 중국어로도 '피죤 한다'는 말이 유행처럼 퍼지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피죤이 중국 시장에 문을 두드린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한.중 수교 이듬해인 1993년 베이징(北京)과 동북 3성 지역에 자사 대표 상품을 들고 찾아 갔다. 아직 세탁 세제에도 익숙하지 않을 때였지만 경제 성장과 함께 곧 생활용품에 대한 수요가 폭증할 것으로 봤다. 그러나 그 속도는 생각보다 느렸다. "그동안 중국 시장에서 거둔 결과에 실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앞둔 지금이 중국 재공략의 최적기"라고 강조했다. 피죤은 중국 정부가 동북아 거점으로 개발을 추진 중인 톈진의 빈하이신취(濱海新區)내 2만여 평 부지에 총 2500만 달러를 들여 공장을 짓기로 했다. 내년 중순께 완공해 하반기부터는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간다. 이곳에서 세탁세제.섬유유연제.살균세정제 등을 연간 50만 t 이상 생산할 계획이다. 현지 법인은 '피죤'의 발음을 딴 '삐쩐(碧珍.'푸른 보배'란 뜻)'으로 정했다. 이 회장의 목표는 5년 뒤 이곳에서 연간 50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것이다. 지난해 1500억원이었고 올해 1800억원을 예상하고 있는 국내 매출 수준을 훌쩍 뛰어 넘는 규모다. 이 회장은 "중국 생산 제품이 한국으로 역수출되거나 동남아 등 제3국으로도 팔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생활용품 시장엔 이미 P&G 등 유수의 다국적 생활용품 기업들이 진을 치고 있다. 그럼에도 이 회장이 이렇게 자신감을 보이는 것은 국내 시장에서의 성공 경험 때문이다. 이 회장은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하면 승산이 있다"고 언제나 말한다. 1970년대 후반 한국 가정 세탁기 보급률이 10%도 넘지 않았다. 그러나 피죤이 나온 지 몇 년 지나지 않아 세탁기는 필수 혼수품목으로 자리잡았고 섬유유연제 시장도 덩달아 커졌다. 피죤 출시 10년 만에 이 시장은 200억원 규모로 커졌고 현재는 1800억원에 달한다. 몸을 씻는 데 비누 하나면 충분하던 90년 업계 최초로 '마프러스'라는 보디클렌저를 내놓은 것도 이 회장의 작품이다. 지난해엔 액체세제 '액츠'로 새로운 세제 시장 개척에 나섰다. 선진국에선 바람에 날리고 찌꺼기가 남을 수 있다는 단점 때문에 가루세제보다 액체세제를 선호한다는 점에 착안했다. 지난해 하반기 100억원 어치 팔린 이 제품은 올 상반기 200억원이 팔리며 매출이 급신장하고 있다. 현재 전체 세탁세제 시장에서 액체 세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8%에 불과하다. 그러나 4, 5년 후 소비자의 20% 이상이 액체 세제를 쓰게 될 것이라고 이 회장은 전망한다. 또 그는 인류가 씻고 닦는 일을 멈추지 않는 이상 생활용품 시장에서 새로 개척해야할 품목은 아직도 무궁무진하다고 했다. 이 회장은 "앞으로 '피죤 한다''액츠 한다'는 등의 일반 동사를 서너 개쯤은 더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글=김필규 기자 phil9@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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